강원랜드의 밤이 채워진 도박 도시 사북을 지나며 드는 생각
정선이라는 지역은 자주 지나쳤지만 강원랜드가 자리한 사북이라는 지역은 지나가본 적이 없었다. 강원랜드는 누군가가 재산을 탕진하는 공간으로 기억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지역인 사북을 가보면 기묘한 분위기를 읽을 수가 있다. 화려하기는 한데 대부분 업종이 전당포, 마사지샵, 유흥업소 그리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도박과 자극 그리고 중독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의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어떤 도시들은 산업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도시들은 욕망으로 만들어진다. 사북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었다. 강원랜드가 들어서기 전에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이른바 사북사태다. 지금의 사북은 카지노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이곳은 탄광 도시였으며 1970~80년대까지 강원도 남부 지역은 한국 산업화를 지탱했던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다.
광부들은 지하 수백 미터 아래로 내려가 석탄을 캐냈고 그 석탄은 한국의 발전소와 공장을 움직였다. 그 시절 사북과 고한 일대는 사람들로 가득한 활기 있는 도시였다. 역사 속에서 에너지를 무엇으로 만드느냐는 가장 큰 이슈였다.
1980년에 이곳에서는 사북사태가 일어난다. 당시 광부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고 있었다. 낮은 임금과 위험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불만은 결국 폭발했다. 광부들과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사북은 며칠 동안 큰 혼란에 빠졌다. 경찰과 충돌이 이어졌고 도시 전체가 긴장 상태에 놓였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가 주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찾아보는 것이 어려웠다. 강원랜드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런지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게 된다. 광산이 사라지자 도시의 기반 산업도 함께 사라졌다. 사람들은 떠났고 지역 경제는 급격히 침체되었다. 정부는 이 지역을 폐광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대체 산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산속 깊은 지역에 위치한 도시가 새로운 경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카지노 산업이었다.
2000년 이 지역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가 만들어졌다. 바로 강원랜드다. 강원랜드는 단순한 카지노가 아니라 폐광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의 결과였다. 탄광이 사라진 도시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도박 산업이라는 매우 특수한 선택을 했다. 그 결과 사북과 고한은 다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자극으로 만들어진 도시이기에 자극을 소비하는 업종만이 남아 있다.도박을 하러 오는 사람 들어 위한 전당포가 정말 많다. 이렇게 많은 전당포가 한 구역에 있는 것은 처음 보게 된다. 그리고 돈을 잃은 사람들과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이른바 콤프 포인트(무료 제공 서비스)조차 도박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판다. 카지노에서는 게임 금액과 시간에 따라 ‘콤프 포인트’라는 보상이 쌓인다. 카지노는 단순히 돈을 잃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포인트와 무료 숙박 같은 작은 보상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게임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도박은 인간이 확률과 기대 사이에서 느끼는 자극에 가깝다.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짧은 순간의 긴장감이 사람들을 카지노로 끌어들인다. 세상에는 그런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있는다고 믿으며 이곳을 찾아오고 때론 스마트폰에서 그런 세상을 꿈꾼다.
탄광 도시였던 사북은 이제 카지노 도시가 되었다. 과거에는 석탄이 이 도시를 움직였다면 지금은 확률과 욕망이 도시를 움직이고 있다. 과거에는 석탄이 이 도시를 움직였다면 지금은 확률과 욕망이 도시를 움직이고 있다. 도시의 에너지가 바뀐 것이다. 도시는 산업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북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그리고 그 기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확률은 언제나 자기 편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