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 후원의 심리

사람들은 왜 낯선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것일까.

사람이 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지출은 있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우리 사회는 담백하고 무미건조할지 모른다. 사람에게는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빨리 채우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를 하는 것이다. 사실 자신을 채워주는 것은 내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과시욕으로 대신한다. 지금까지 유행하듯이 무언가가 지나쳐간 것은 모두 이런 과시욕과 나도 그 대열에 빠지 않겠다는 심리가 자리한다. 필자는 두쫀쿠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도 않고 유행과는 상관없이 먹고 싶은 것만 먹기 때문이다. 우선 그런 가격을 주고 그 쿠키를 먹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남들도 다 먹어봤다는 그런 이유는 필자에게 납득되지 않는다.


요즘의 분위기로 볼 때 차량은 이제 과시의 수단으로 보기가 애매해지고 있다. 물론 경기가 어려워진 탓도 있다. 여기에 전기차가 나오면서 차량을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마치 대형 전자체 품처럼 보는 경향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마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명품의 가치를 아무도 몰라준다면 명품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이걸 살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이와 함께 자신의 가치도 높게 봐주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신을 호명해 주고 춤을 춰주고 더 대화의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만을 가지고 BJ에게 후원하는 남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정상적인 사람과의 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그런 관계에서 후원하고 슈퍼챗을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특정 BJ문화가 채팅창 분위기 속에 누군가가 큰돈을 보내면 다른 참여자들이 호응을 한다. 바로 그 관심과 인정욕구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가 주변사람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 돈을 쓸 곳이 없다는 이야기다. 즉 내면이 채워진 사람에게 누군가의 관심은 큰 의미가 없다. 오직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BJ에게 후원하는 돈과 룸살롱에서 쓰는 돈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정상적으로 돈을 번 사람이 쓰는 돈보다 코인, 도박,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번 사람들의 쓰는 비용이 확실히 높다고 한다. 최근에 캄보디아등의 단속등으로 인해 쓰는 돈이 줄었다고 업계 관계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고 보인다. 현실의 돈을 관심의 화폐로 바꾸려는 사람들의 뇌는 어찌 보면 즉각적인 반응에만 감각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 인정, 관심으로 BJ 후원 구조는 결국 관심을 가치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적인 가치다. 도박, 카지노, 팬덤, 스트리밍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그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주겠지만 정작 본인에게 남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더 많은 돈과 더 큰 후원은 도박 심리와 경쟁 심리가 함께 동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의 후원 구조를 보면 묘한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누군가가 큰돈을 보내면 채팅창은 그 순간 하나의 작은 무대가 된다. 이름이 불리고, 화면 속 사람은 반응을 보이고, 참여자들은 그 장면을 함께 지켜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후원을 한 사람이 그 공간의 중심이 된다.


어쩌면 그 장면이 많은 사람들을 계속 그 공간에 머물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누군가의 중심이 되는 경험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주목을 받지 않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에서는 단 한 번의 후원으로도 그 중심에 설 수 있다. 문제는 그 순간이 매우 짧다는 데 있다.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새로운 후원이 등장하면 시선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그 관심을 붙잡기 위해 더 큰돈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구조는 어쩌면 카지노에서 느끼는 긴장감과도 닮아 있다. 한 번의 선택으로 판이 뒤집히고, 그 순간에 모든 시선이 모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관심을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관심을 얻는 방식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는 지식으로 관심을 얻고, 누군가는 창작으로 관심을 얻는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노력과 성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낸다. 그런 관심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쌓이면서 사람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순간적인 관심은 다르다. 그것은 불꽃처럼 잠깐 밝게 빛나다가 곧 사라진다. 그 빛을 다시 보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일 수도 있다. 돈은 결국 선택의 결과다.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을 넓히기도 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단순한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어쩌면 인터넷 방송 속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을 원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다만 그 방식이 점점 더 빠르고 즉각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은 왜 돈을 쓰는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관심이 잠깐의 반짝임으로 끝날지, 아니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경험으로 이어질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 일일 것이다.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원래 자신에게 있었다. 그걸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면 공허함과 자극만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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