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미래의 남녀관계와 결혼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지난 10년간의 이혼과 관련된 판례를 살펴보았다. 현재 한국의 법과 제도는 남자와 여자를 평생 공동체 모델을 전제로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남자에게는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가 있다. 즉 기본적으로 혼인은 장기 지속되며 부부는 경제공동체다. 가사와 양육은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매우 높은 기여도로 인정하며 혼인 중 형성된 재산에 대해서는 공동 기여로 보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단순한 손해가 아니라 통제 불가능성에 있다.
여성은 감정적으로 사랑이라는 신용수표를 내밀지만 남자들은 그것이 매우 불확실한 증표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즉 연애 때 보여주는 것은 내면화되어 있는 문제를 숨긴 채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가정볍원에서 결혼이라는 것의 기본 출발점은 혼인은 개인 간 계약이 아니라 생활공동체(경제·정서·양육의 결합)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과거 산업시대의 방식의 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수치로 보이는 소득 활동은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가사와 양육, 정서 유지 같은 것은 잘 눈에 뜨이지 않는다.
경제활동에 기반한 재산형성은 숫자로 입증이 가능하지만 가사노동과 같은 모호한 분야는 부정 입증이 거의 불가능했다. 즉 변호사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혼인은 개인 간 계약이 아니라 생활공동체(경제·정서·양육의 결합)라는 전제를 통해 생활공동체 추정 원칙을 기반으로 판단한다. 즉 어떤 대상에게는 투명하게 보이는 수치가 있지만 어떤 대상에게는 모호하고 확인이 불가능한 영역에 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지금도 실질 기여보다 “혼인 유지 사실”만으로 인정되는 경향이 있고 현대 맞벌이·개인화 사회와 법리가 충돌하며 전략적 혼인/이혼 가능성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과거의 결혼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전통적인 남자와 여자 역할이 완전히 와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적인 부분은 남자에게 많이 무게를 지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여자가 더 부담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율로 보면 낮다. 한국의 이혼 재산분할은 “누가 벌었는가”가 아니라 → “혼인 중 공동형성한 재산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민법 체계(친족·상속 편 포함)에 근거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법과 사회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미 형사법등에서는 가족 내 폭력·갈등조차 사적 문제로 인식되는 문화를 바꾸며 폭력등에 대한 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에 대해서는 과거 관점에서 머물러서 경제공동체로 보며 법적으로는 투자 개념이 성립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남녀가 결혼할 때 일방이 더 경제적으로 조건이 좋다는 가정하에 이는 불합리하다고 생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사회가 변해서 과거에 기대하는 신뢰나 존중에 대한 기대이익이 크지 않는 상태에서 경제적인 부분만 리스크로 인식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만약 가사노동 기여를 엄격히 증명하도록 하면 전업배우자 보호가 거의 불가능, 혼인 내 권력 불균형 심화, 이혼 후 빈곤층 급증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는 상당 부분 해소가 되어 그렇게 판결하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과거 세대의 결혼은 단칸방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불만족이 양쪽에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런 고생과 리스크를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 = 노동력 결합, 혼인 = 주거 안정, 혼인 = 사회적 정상성 확보, 혼인 = 노후 안전망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삶의 리스크가 확실히 줄어드는 구조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서적 기대보다 더 낮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재산분할 불확실성, 장기적 법적 책임 가능성, 혼인 유지 기간이 길수록 리스크 확대는 이미 많이 표면화되고 있다. 현재 2030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제도 리스크에 들어간다는 감각이다. 여기에 TV등에서는 여전히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서 각종 연애방송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주 수요층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춘 방송들이 많다. 이는 현실적인 왜곡을 만들어낸다.
정서적 만족은 측정이 불가하며 관계가 안정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미 삶의 의미는 파편화되어 개인화되어 있다. 기대수익은 감정적이면서 비용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회과학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위험 대비 수익률이 무너진 상태라고 볼 수가 있다. 이를 개선하려면 법과 제도가 바뀔 필요성이 있다. 계약현 혼인이라던가 자산 분리형 혼인과 기간형 파트너십이 필요한 때이다. 이렇듯 삶은 개인 단위로 바뀌어가는데 법은 여전히 가족 단위로 보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이미 개인 단위로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는 여전히 가족 단위의 지속성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인은 이동하고, 직업은 바뀌고, 자산은 각자의 책임 아래 축적되는 시대에 혼인만이 과거의 안정적 공동체를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불일치는 결혼을 장려하거나 비판하는 담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도가 전제하는 삶의 방식과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혼인을 계약처럼 명확하게 나누고 책임을 수치화하는 방식이 또 다른 갈등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전통적인 가족 보호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결혼 기피 현상은 누군가의 가치관이 변해서라기보다, 시대가 이미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에 더 가깝다. 제도를 그대로 둔 채 개인에게만 선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라진 다기보다는, 그것이 만들어졌던 사회적 조건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산업화 시대에는 가족이 하나의 경제 단위였지만, 오늘날의 개인은 이미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전제를 유지한다면 혼인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도’가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선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후에는 각자 자산 유지 결혼 (계좌 분리), 공동명의 최소화, 혼전계약서 증가, 결혼식 비용 축소, 동거 후 혼인 선택, 비혼 출산 증가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결혼을 유지할 것인가 폐기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한 사회 속에서 어떤 형태의 관계가 현실과 맞닿을 수 있는가를 다시 설계하는 일일 것이다. 삶의 방식이 바뀌었는데 법과 제도가 그대로라면, 사람들은 법과 제도를 따르기보다 제도를 우회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상은 바로 그 전환의 초입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