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태도는 공손 하지만 내용은 무례한 차장에 관하여
0.
오로지 관계 지향적이다.
흔히 목적지향형 Vs 관계 지향형 인간을 구분하곤 하는데, 소 차장은 오로지 관계 지향적이다. (이 마저도 궁지에 몰리면 소가 고기를 먹 듯 지키지 못하게 되지만...) 회사원으로서 기본적인 책임감보다 관계 안에서 본인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느끼는 그 감정이 우선한다. 소차장의 메인 업무는 보도자료 배포인데, 기본적으로는 오전에, 적어도 이른 오후에는 언론사에 뿌려야 하지만 늘 늦게 배포하여 행사 당일 언론 게재량이 맨날 부족했다. 그럼에도 소 차장은 옆에 대리가 포장하고 있는 사은품 포장을 도와주는 것이 더 옳은 가치라고 생각했나 보다. 문제는 그 대리가 만만치 않은 뱀 대리라 소 차장한테 포장을 다 맡기고 자기는 커피 마시러 가서 수다 떨고 오는 등 이를 이용해 먹어도 그는 이것이 바로 인간계에서 마땅히 우선해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라고 느끼며 지켜나갔다. 심지어 자기한테 맡기고 놀러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도 웃으며 '너무한 거 아니에요?'라고 웃어넘길 뿐이었다.
1.
유치하다.
마치 본인이 어벤저스의 토니 스타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언맨이 아닌 자연인 토니 스타크는 인류의 평화고 나발이고 아내와 딸과 함께 오손도손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전 우주적인 평화를 위해 무시할 수 없는 본인의 아이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며 건틀렛을 끼고 핑거스냅을 날린 것처럼, 본인도 마땅히 써야 할 보도자료를 내팽게치고 경품 포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 팀장한테 그렇게 털리고 나서도 “옆에 대리가 포장한다고 너무 고생하잖아요”라고 말하는 것 보면 확실하다. 그래서 사실 소 차장도 심장이 있다는 증거를 인류에 남기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가 남긴 것이라고는 “사람 좋던 소차장이 나중 가서는 지가 호랑이 팀장인 줄 알더라”라는 인상뿐이었다.
2.
미성숙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적 & 심적인 성장이 일반적으로 그 나이 때의, 그 직급의, 그 연차의 기대할 만한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 사람이 곱게 자라서 그렇다는 주변의 평가도 있고, 살면서 수 없이 마주한 스트레스를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만이 방법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터득해서 발생한 것 수도 있다고 추측해본다. 측은지심으로 대충 넘어가 주는 타인들로 인해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혹은 고통은 그 상황을 넘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관계지향형 인간이라는 본성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그렇지 호랑이 팀장의 타깃이 되어 수 없이 호통당하기 몇 개월이 지나자 점점 사람이 변해갔다.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본인이 윗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아래 직원에게 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옆에 앉아 있는 뱀 대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되지 못했고, 타 부서의 낮은 직급 직원들에게 그야말로 제2의 호랑이 팀장이 되어 그야말로 온갖 꼰대 짓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개미 사원, 이런 식으로 보도자료 요청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개미 핥기 대리, 일주일 뒤에 이벤트 시작인데 미리 협조를 미리 구했어야지?"
"꼽등이 과장님, 6하 원칙으로 정리해서 팀장님 참조해서 전자결제로 업무 요청해주세요.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즈음해서 항상 그 앞에 놓여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3.
거짓말한다.
그래서 그는 거짓말하는 겁쟁이가 되어갔다. 그저 눈앞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하지 않은 협의를 했다고 하고, 받지 않은 결재를 받았다고 말하게 된다. 근데 어린이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애가 거짓말하는지 안 하는지 보통 다 알기 마련이다. 정말 맞냐고 수차례 확인하지만 누가 봐도 거짓말하고 있는 표정으로 맞다고 우기다가 결국 사달이 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협의와 결재에는 돈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수습이 가능한 영역이지만, 외부 관계사가 연관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팀장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팀 내 문제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덮어보지만, 임원까지 알려야 하는 상황이면 철저하게 꼬리 자르기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관계사에서 컴플레인을 직접 임원에게 하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차장이 맡고 있는 지점 이벤트는 중요도가 높지 않은 일이었으나 전국구 단위 지점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형 마케팅 대행사를 낄 수밖에 없다. 일이 정상적일 때는 모르겠으나, 소차장이 본인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강약약강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게 행동하는 것) 모드로 전환되고 나서 을. 입장인 마케팅 대행사에 갑질이 도가 지나쳤다. 문제는 그 대행사가 계약서상에만 을이고, 사실은 회사 대표 지인이라는 프리미엄으로 긴 시간 동안 계약을 맺어온 관계라는 점이었다. 갑질도 해본 사람이 해야 큰 탈이 없는데 뒤늦게 갑질 배운 소차장은 그 정도가 지나쳤고, 결국 해당 업체 대표와 우리 회사 대표와의 술자리 다음날 소차장은 징계를 받게 되었다. 두 대표의 술자리에서 마케팅 대행사 대표는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 그 콘텐츠 마케팅팀에 소 차장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이 문장의 뜻은 사람인척 하는 원숭이 2편에 한번 정리했으니 참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