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통 때문에 보험사기꾼 취급받는 건 유쾌하지 않아
크림치즈 브레드
1960년대 오목교 근처,
남녀 상조차 따로 차리던 시대에 한 집에서는 망측하게도-
한 여자애의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한 달에 한 번씩 울려 퍼지곤 했고
여자애의 수줍음 많던 아버지는 헛기침을 흠흠 해대면서 집 밖으로 나서곤 했었다.
그 여자애가 자라고 자라 드디어 아이를 낳고 해방되었다 회상하는 그건,
바로바로 생리통.
하지만 유전이란 건 참 무섭기도 하지...
아이를 낳을 일이 없던 그 여자애의 딸은 그녀의 체질을 그대로 이어받아
첫 생리가 터진 순간부터 지독하게 길고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중고등학교 때 보내게 되었다.
여자애의 딸은 결심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이걸 해방시킬 걸 반드시 찾아낼 테다.
그리고 정말로 성인이 되던 스무 살 때, 혼자서도 씩씩하게 병원을 찾아
길고도 양 많은 생리통과 생리불순 등등과 함께 오래도록- 빠빠이 해왔다.
이제 이십 년이 넘게 유지하던 생리통 치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나는 보통 호르몬이 포함된 루프나 임플라논을 이용해 왔는데
임플라논을 잘못 팔에 꽂는 바람에 아파서 펄쩍 뛴 이후로는 그냥 편하게 루프를 사용하곤 했다.
보통 주기가 5년이라 얼마 전 시기가 다 되었다는 걸 깨닫고
바쁜 와중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하지만 이게 웬 낭패인 걸까나...
5년 전에 시술했던 산부인과는 이미 사라졌고, 그 자리에 자리한 다른 산부인과 접수실에서는
하나하나 일일이 서류를 찾아봐야 한다면서 전화기 너머에서도 알아차릴 정도로
꽤나 귀찮아하는 말투를 내뱉었다.
하기사, 이전에 살던 지역과 지금은 차가 안 막히더라도 한 시간 거리.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뭐 잘 됐다. 그냥 집 근처에서 다시 찾아봐야지-라고 아주 가볍게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는 그땐 알지 못했다.
집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 리스트를 싹 다 들고 펜으로 지워가며 전화했지만
삽입되어 있는 루프를 제거하고 바로 삽입할 수 있다 대답해 주는 병원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때부터 아마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늘 그냥 때 되면 해야 하는 거라 생각해 와서 내가 뭘 5년 전에 했었는지 기억이 안 나기도 했거니와,
원래 그 병원에서 받았던 게 아니라면 시술해 줄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
여튼 와중에 매번 타이밍을 놓쳐왔던 터라, 알아보던 날짜는 하루 이틀 밀렸고
더는 미룰 수 없겠다, 이거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던 나는
재택으로 돌린 날 점심시간을 더해 오후 시간을 짬 내서 겨우 겨우
일단 와보세요-라고 말해주는 상냥한 간호사가 있는 병원을 찾아서 방문했다.
내겐 고작 두어 시간이 여유 시간의 전부였다.
당연했다.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면서 냉큼 해줄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병원이 어디 있던가.
하지만 불러서 들어간 진료실에서 나는 순식간에 보험사기범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루프를 단순 피임 기구로 쓰면 해당사항이 없지만,
나처럼 생리 불순에 과다 생리, 과다 생리통의 경우에는 보험 처리가 된다는 건 알고 있어서
초음파로 보고 확인해봐야 한다 정도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 의사는 초음파를 찍고 나서 며칠을 지켜본 다음 그다음에 시술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내놨다.
혹시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경우인데 바로 해드릴 수는 없는 거잖아요.라고 몇 번이고 말하면서.
초음파를 보는 거야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받는 시술이 아니었는데 그걸 며칠씩 지켜보고 그다음에 시술해줄지 말지를 결정한다니,
그 이유가 보험 적용 때문이라니.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그 시술을 보험 처리하면 병원이 손해인 건가?
아니면 내가 되게 의심스럽게 생겼나?
나로서는 정말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방문한 것이었기에
초음파를 찍고 기존 수명을 다한 루프를 제거하고 다시 삽입하는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며칠이고 경과를 봐야 한다는 말에는 몹시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처리할 수 없다면 그냥 오늘은 갈게요.라는 내 대답에
어쩐지 만족스러운 얼굴이 된 의사는 그러시죠, 그럼 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도 아무런 소득도 없었으면서, 오히려 시간 낭비하고는 진료비까지 수납하고 나오는 길은
어쩐지 몹시 불쾌한 찝찝함으로 뜨거운 햇살만큼 끈적한 느낌으로 내 볼에 들러붙었다.
결국 시술은 또 이 주가 흐른 어느 날, 회사 앞 병원에서 받게 되었다.
퇴근 한 시간 전, 겨우 숨 돌릴 수 있었던 상황에서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방문한 병원.
우습게도 그 자리에서 초음파를 받았고 바로 상태 확인한 다음
그 뒤로 15분 정도 뒤였나, 바로 루프를 제거하고 다시 삽입했다.
가까스로 다음번 생리통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다 안심하던 그 순간,
나는 내심 안심하던 그 의사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라 다시 불쾌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자신의 몸을 가지고 보험사기를 칠 거라 생각하다니.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생리통을 가지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분 나쁜 기억.
크림치즈 브레드를 굽다 말고 아, 살짝 아픈데? 하고 고개를 꺾어 본 날짜가 대략 그 기간이었고
덕분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으- 여전히 불쾌한 기분.
크림치즈를 좋아하지 않는데,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구으려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려서
그냥 간단히 퇴근 후에 만들 수 있는 걸 고르다 보니 미니 크림치즈 브레드가 적당할 것 같아
오랜만에 손반죽까지 하면서 만들었다.
원래 6개 기준 레시피였는데, 내가 가진 은박 파운드케이크 용기가 너무 미니라서
결국 12개로 나눠서 구었더니 딱 맞았다.
달달하고 크리미 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크림치즈가 가득 들어간 크림치즈 브레드.
불쾌했던 기분이 조금은 달래지는 기분이랄까.
요즘 들어 정말 인간에 대해서 꼴뵈기 싫은 순간들을 유독 많이 마주치는 것 같다.
.... 삼재인가??
얼른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이번 여름은 너무 길다.
너무 길고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얼른 시간이 흘러 눈이 보고 싶다. 눈오는 바다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