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튀일
그랬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나의 일년은 많은 사건 사고들로 채워져
정신없이 달려오곤 했다.
올해도 뜻하지 않은 회사 내 이슈가 초에 있었고
그걸 좀 수습하려 드니 아이가 떠났고
그 뒤에 비로소 며칠 전에야 올해 초 있었던 회사 이슈의 마지막이 대략- 마무리된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전쟁을 치룬 뒤의 잔해는 남아 있어서 여전히 뒷수습중이긴 하지만,
잘 될 거라 믿는다.
그래도 올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는 엉망진창이라도 베이킹을 시작했다는 거다.
얼마나 오랫동안 꿈꿨던 꿈이었을까.
어느 밤엔가 일을 하다 하다 지쳐서 터지기 직전에,
쿠팡에서 오븐에서부터 필요한 일련의 물품들을 금액 생각하지 않고 싹 다 쓸어담아 놓고서는
금액을 다 합해보니,
놀랍게도 고작 30만원 남짓이었다.
30만원 남짓.
내가 십여년 동안 꿈꿔왔던 걸 실천하는데 30만원 정도가 다라니.
그래도 나는 그 순간 그걸 구매하지 못했다.
빵을 굽는 걸 안 배우고 지른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내 일상에서 베이킹 수업을 받는다는 건...
차라리 자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이 다섯에 밤낮 없는 스타트업 생활에 혼자 사는 엄마는 집안일까지-
그렇게 누구 말마따나, 욜로족 미스가 아니라고- 라며
좋겠다- 홀가분하지? 고양이들도 별로 손 안 가잖아. 퍽이나 쉽게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누군가 걷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하면, 나는 보통 그냥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말해봤자 소용이 없는 짓이라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대신 힘들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해주곤 한다.
그냥 힘들어 해. 충분히 힘들어 해.
앞을 보고 걷기 힘들면, 바닥 보고 걸어.
그래도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
다만, 벽에 머리 부딪히지 않게 가끔 고개만 들어줘.
방향이 맞는지만 확인하고 또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도 돼.
힘내지 마. 힘들면 그냥 힘들어 해.
천천히 걸어도 되고, 발끝만 보고 걸어도 돼.
그건 누구에게 들어서 얻은 교훈이 아니다.
내가 몸으로 체득해 낸 교훈이니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에그 타르트를 만들고 나서 남은 흰자를 어디다 쓸까 하다가,
휘낭시에 보단 다른 걸 도전하고 싶어 뒤적거리다가 찾은 아몬드 튀일.
사실 간단하다.
흰자에 버터에, 약간의 박력분과 그리고 아몬드 슬라이스.
동글게 만들고 싶어서 전병 몰딩을 따로 주문해? 까지 갔다가
수도 없이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내가 원하는 사이즈의 작은 실리콘 몰드를 찾았다.
아주 작은 스푼으로 떠서 실리콘 몰딩 안에 흘려넣고 얇게 펴준다.
펴주는 게 꽤나 귀찮긴 하지만,
하나 집어 먹고는 꽤나 맛있다고 얼굴이 환해진 아저씨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간간히 과자를 먹는 나도 즐길 수 있는 사이즈라고 생각해서
공장 돌리듯 몰드에 넣고 굽고 꺼내고 털어내고 다시 몰드에 넣는 걸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반죽이 다 오븐에 들어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눅눅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방습제까지 넣어 뚜껑을 꼭 닫아 놓으면 끝.
과자 봉지 하나 뜯으면 끝까지 먹는 게 생각보다 곤혹스러운 나를 위해서도
하나 두 개씩 꺼내 먹기 딱 좋은 자그마한 아몬드 튀일이 된다.
물론 아저씨도 두어 통 집어주니 공부하거나 야간에 먹기 좋다면서 옴뇸뇸- 한다고 맛있단다.
올해도 고단했다-
고단한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남은 세 아이들에겐 올해는 끝. 이라고 못 박아두었다.
올해는 더는 안 돼. 아무도 못 떠나. 올해 장사 끝.
올해 한 아이를 더 잃으면 내가 너무 무너질 것 같아 신신당부해두었더니,
다행이도 남은 세 아이는 너무 잘 먹고 너무 잘 자고 너무 제멋대로이다.
아무렴, 고양이는 제멋대로인 게 매력이다.
이제 곧 가을이 올 거고, 추석이 지나 조금 더 지나면 눈이 오겠구나- 싶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하겠다는 마음도 꽤나 오래 전에 먹었던 마음인데, 올해 시작해버렸네.
8월 말부터는 새로운 서비스 기획도 공부하기 시작할 거고.
또 열심히, 또 부지런히...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