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해야 할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기

피넛 버터 쿠키

by 유리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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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참 주책이다. 왜 아침 댓바람부터 울었을까.


이사하기 4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막상 이사를 간다 하니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사람들이 마구 떠올랐다.


한 집에서 6년을 살았다.

그만큼 주위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많았으니까.


우리 애들 의사 선생님,

까탈스러운 나를 늘 기분 좋게 해준 네일샵 선생님,

나에게 피어싱을 해주던 주근깨 겁나 매력적인 선생님,

늘 어느 시간이든 차에 문제가 생기면 오세요! 하고 말해주던 공업사 사장님 등등


그 중에서도 김밥집 할머니 사장님이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갈 때마다 뜨끈뜨끈 갓 지은 밥에 바로 만들어낸 속재료들을 척척 얹어서 싸주시던.

언젠가 나 대신 남친이 가서 사는데 당연히 카드가 될 줄 알고 덜렁 카드만 들고 갔다가

카드가 안 되는 걸 알고 당황해서 이체해드린다 했더니만, 돈 없어도 된다고 괜찮다고 하셨댄다.




오늘도 그랬다.

막상 가서 보니 먹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고르니 돈이 모자랐는데,

그런 거 신경쓰지 말라고, 뭐 먹고 싶냐, 싸준다 몇 번이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사장님.


왜인지 눈물이 났다.


오전 6시부터 낮 2시까지만 열고, 그 와중 월요일은 안 여시고,

내 출근 동선안에도 없어서 출근길에 들리려면 일부러 차를 돌려서 돌려서 가야 하는 집이었지만

그 집 김밥을 손에 쥔 날은 럭키였다.


결국 천원이 모자랐지만 안절부절 신경쓰는 건 돈 못 받은 사장님이 아닌, 드리지 못한 내쪽이었다.


검은 봉다리를 쥐고는 우물주물 하다가 저 이제 이사가요, 하고 말하는데

왜 눈물이 핑 돌아서... 아침 댓바람부터 따뜻한 김밥 봉지를 들고 울었다


울먹거리면서 구어둔 미니 바스크치즈케이크와 감자 버터링 쿠키, 그리고 피넛버터 쿠키를 드렸다.

배워본 적 없는 베이킹이라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드리고 싶었다고.

한사코 뭐 이런 걸 주냐, 가서 먹어라 하시는 걸 드렸다.


"나도 22년을 했잖아, 이제 날 따뜻해지면 그만할까 해- 그 전에 꼭 와. 한 번 꼭 와. "


사장님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면서 뜨거운 밥솥에 눌리고 재료 손질에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내 등을 쓸어주셨다.

감사하신 분.


나는 참 많은 이들의 손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구나. 새삼 생각했다.




주말에는 공업사에 가서 엔진오일 교체 겸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대장정의 마무리가 되겠지.

이제 다음주면 또 다른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포근하고 따뜻한 늦겨울을 맞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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