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니 깻잎지
이 집에 이사오기 전, 늘 가졌던 꿈이 바로 베란다 텃밭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주제에' 함부로 꿈꾸기 어려웠던 꿈인데,
이젠 아이들도 나이가 들어서 인가... 예전처럼 천방지축 마구잡이로 다 뜯어 삼키지 않는 탓에
작게나마 뭔가를 키워볼 수 있었고 그 첫번째 타자가 깻잎과 상추였다.
"모종이요?? 이 날씨엔 없죠-, 봄에 와요, 봄에."
그렇지. 지금 2월이지, 맞다...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푸식, 하고 바람이 빠지는 기분이여서 울컥하는 마음에,
다이소에 들러 씨앗을 사서 심은 게 그 때니 지금 6월. 꼬박 4개월 동안 키운 결과가 바로
위의 "쟤들"이다. 세상에나....
너무 앙증맞아서 헛웃음도 안 나오고, 뚝뚝 끊어 수확하기도 미안해져서 결국 가위로 살금살금 잘라냈다.
아래에는 새로운 작은 잎들이 나오고 있고 저렇게나 작은데 나름 노땅 취급 받고 있으니 어쩌나, 거둬야지.
하지만 내 눈에는 애기도 이런 애기가 없어.. 어쩐다... 잠시 고민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손끝에 묻어나온 깻잎향에 숙연해져 버렸다.
저 작은 것들도 지들이 깻잎이라고, 까슬까슬한 잎에 향까지 뿜어내고 있었으니...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눈에 얼마나 작든지간에 여튼 최선을 다 해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을 거쳐 자라온 것들.
아무리 작고 약하더라도 스스로 '깻잎'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여과없이 뽐내는 것들에게
나는 어쩐지 좀 숙연하고도 숭고한 마음이 들어 최선을 다해 예의를 갖추어
깻잎지로 만들기로 결정, 깨끗한 물에 씻어내고 과일 씻는 세척제로도 씻고
양념도 검색까지 하고 당근을 썰고 양파를 썰었다. 물론- 모든 음식의 화룡점정인 볶음깨도 잔뜩.
얘들을 어따 써...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반찬통 하나 가득 차서는
빨갛고 까만 양념장을 이불 삼아 누워서는 초록초록한 색을 내놓고 있는 깻잎들을 보니
결국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바쁜 와중에, 밤 12시 넘어서, 굳이 부엌에 서서는, 칭얼대는 고양이들을 달래가며.
아직 내 손바닥만한 베란다 텃밭에는 상추도 자라고 있다.
너무 작아 감히 손가락 두 개를 쓸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검지로 슬슬 쓸어보는 작디 작은 상추.
그래도 어엿하게 상추 모양을 내며 자라고 있고, 씹으면 상추 맛이 난다.
상추에서 상추 맛이 나고, 깻잎에서 깻잎 맛이 나는데
그게 그렇게나 기특할 수가 없다.
그런 거다.
최선을 다한 어떠한 생명에겐 자연스럽게 예의를 갖추고 싶어지는 마음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