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영경 Apr 22. 2022

사랑을 끓인다면 어떻게?

보글보글 끓인 사랑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면 먹고 가"라는 유행어를 남겼던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처럼 사랑도 정말 변하는 것인지 궁금한 봄날이 우리를 지나가고 있다.


그 사이 무시무시했던 코로나 바이러스도 변이를 일으켜 약해졌다. 조금이라도 약한 구석이 있는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다 쓸어가 버릴 것 같았던 공포의 바이러스가 그 세력이 더 커지면 어쩌나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었었다. 지금은 변화의 어느 즈음에 와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바이러스와 함께 상당히 피곤해진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 그들이 약해졌다는 소식에 우리도 걸어 잠근 문을 열고 바이러스와 함께 살기 위해 조심스레 시도하는 중이다.


멀리서 서로를 담는다. 찰칵 잘 있나요?


이전보다 조금은 약하다는 그 코로나가 우리 집에도 상륙했다. 남편은 격리 6일 차이다. 늘 일하느라 바빠 집에 있지 못했던 아빠였는데 2층 방에 꼼짝없이 갇혔다. 다행히 릴레이는 이어지지 않고 아직은 잘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 모두가 집에서 일주일 동안 함께 있지만, 또 함께 있지 않는 묘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안부를 묻는 정도 외에 별다른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문틈으로 서로의 소리를 들었고 문자메시지로 소통하거나 가끔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면서도 또 많은 시간 조용히 지내는 중이다.


우리가 같은 집에 말없이 그저 조용히 있는 이 상태도 어쩌다 보니 편안해졌다. 신혼의 나는 쉴 새 없이 뭔가를 말하고 이야기를 듣기를 바랐다. 참을 수 없어 터져 나오는 감정의 노래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를 붙잡고 여기를 가자고 저기를 가자고 끌어당기곤 했었었다. 그때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은 다른 것 같다. 사랑이 변하냐고 묻는다면 그런가?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변한 사랑은 향기로 만들어져 그윽하게 집안을 채우고 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랑처럼 불 조절을 못해 국 하나 끓이는데 부엌을 엉망을 만들던 나는 여유 있어졌다. 그가 힘을 내서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게 쓱싹쓱싹 죽을 끓인다. 보글보글한 사랑을 끓여 낸다. 재료를 썰어 넣으며 죽을 끓이면서도 고개를 돌려 아이와 윙크를 하고 포옹을 한다. 방에 따로 힘들게 있을 아빠를 위해 식사 트레이를 준비하면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가져다 드리겠다고 달려든다.


치우는 것도 제가 할게요. 내려올땐 천천히 천천히..


각자의 방에서 향기와 맛으로 배를 채우고 아이들과 나는 마당으로 나간다. 봄의 꽃과 풀을 뜯어 보글보글 마법의 요리를 나에게 해주는 아이들이 바이러스를 치유해 주는 천사처럼 내 주변에 함께 한다.


마법 수프를 만드는 중이에요. 세상의 색을 모아 우리 몸을 아름답게 해주는 수프.



우리가 서로에게 끓는 열정을 가지고 만났을 때의 24시간과 지금 조용히 자신 그대로 자유로운 모습으로 함께 또 따로 있는 24시간은 분명 변했다.


신혼 때는 변화가 놀라워서 가끔 깜짝 놀라며

"아 우리 정말 결혼해서 부부가 되어있는 거예요?" 하고 아침마다 말할 때가 있었다.


이제는 서로 조금은 떨어져 말없이 바라보며 서로가 좋을 때도 힘들 때도 함께하고 있는 따뜻한 순간 그대로를 온전히 느낀다. 사라지는 이 순간이 아쉬워서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보글보글 끓어있다 딱 좋을 만큼의 온도로 식은 죽을 먹는다. 그 맛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지만 그 마음을 담아 서로의 사진을 남긴다.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2명의 별개의 사람의 만남이지만 그저 단순한 집합이 아니다. 죽을 만들듯 냄비에 함께 넣어 끓이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외부에서 끓이는 열이 없어도 자신의 내부에서 열을 발산하여 서로를 끓일 수 있게 만든다.


부정적인 의미를 담았지만 '애끓는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애는 창자를 의미한다. 창자를 끓일 정도로 몹시 안타깝고 속이 끓는다는 뜻이다. 애끓는다는 말처럼 속을 심하게 끓이면 애를 태우게까지 할 수 있다.

끓이고 태우는 그 열은 어디에서 나올까? 어떤 자극이 있어서 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내서 내부에서 나는 열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 사랑이든 열정이든 욕망이든 마치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수프처럼 열로 끓여질 수 있다.


나가고 싶어 애끓는 고양이 민트 찢어진 방충망에 힘없는 커튼봉으로 막아봐야.. ㅎㅎ


그 수프는 혼자 끓을 수도 있다. 한쪽만 끓고 하나는 그대로인 사랑은 조화로울 수 없음이 명백히 보인다. 하나는 열이 가해지고 하나는 생으로 그대로 있다면, 한쪽만 다 닳아 없어지고 둘은 섞이지 않았다. 하나의 재료만 남겨진 요리는 새로 창조된 변화는 아니다. 이전 그대로일 뿐이다.


수프는 다른 재료와 함께 끓일 때 더 멋진 형태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수프는 천천히 동시에 익을 수도 있고, 어떤 것만 빨리 익어버리는 등 재료의 속성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사랑의 열기 속에서 두 사람은 점점 변화된다. 변화된 자신이 믿을 수 없어지겠지만 분명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기쁜 상태이다. 현실의 자신과 상대의 관계가 하나로 얽혀 새로운 색과 향을 내고 있는 변화를 본다. 신기해서 매일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것에 감사해한다. 그렇게 하나로 끓여지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같은 열기 안에서 만드는 조화로움이 최고의 수프로 탄생되는 것이다.




'이글이글' 끓어넘칠 수도 있다. 불타는 욕망, 야심, 과도한 감정이 담긴 사랑이 온도를 급격하게 올린다. 급변하는 온도에 스스로가 제어되지 않아 폭발한다. 조절이 불가능한 상태의 '이글이글'은 넘쳐흘러 엉망이 된 부엌을 연상하게 된다. 급격한 온도에 수프의 맛은 가장자리에 눌어붙은 탄 맛을 포함한다. 충분히 우러나오지 않은 육수의 밍밍함도 느껴진다. 분명히 함께 끓는 것 같았는데 어딘가 균형과 조화가 안정적이지 않아 서로가 파괴적이 될 때도 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보글보글' 끓는 온도의 수프는 은근한 열정이다. 지속적인 변화이다. 점진적인 단계의 상승으로 서로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로 천천히 3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온다. 하지만 넘치지는 않을 정도로 끓고 있다. 어느덧 올라오는 기포는 하나씩 터져 뿌연 김으로 주변을 촉촉하게 만든다. 뚜껑에 송골송골 물기가 고여 떨어진다. 수프는 냄비 속에서 상승과 하강을 하면서 자신과 상대를 섞어 지금 현재의 온도에  맞는 속도의 춤을 추게 된다. 끓어 넘치지 않지만 오래오래 끓다 보면 언젠가는 사라지게  것이다. 하지만 딱딱한 고체의 상태로 다시 남아 처음 수프가 되기  물이 필요했던 재료의 상태로 굳어질 것이다. 이전과 다른 고체의 재료로 다시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와 만나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에 천천히 참여하는 것이다.

함께 끓여져 자기가 변화되는 것을 느끼는 일이다. 끓어서 고체든 기체든 어느 것으로 변화되어도 우리는 결국 남을 것이다. 다 끓여진 다른 모습의 나도 나이고 그 후의 남겨진 찌꺼기는 모여서 어떤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흙으로 들어가 식물의 영양이 되는 순환의 과정을 통해 다시 내가 된다.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지켜보는 지금 순간은 멋지게 끓여진 수프이든 타들어가 망쳐진 수프이든 자연스러운 순환의 과정 중 한순간뿐일 것이다.


나는 보글보글 천천히 오래 끓여지고 있는 나와 그의 이 순간이 편안하다.

고체였던 내가 끓여져 액체가 되어있는 이 상태, 가장 변화하기 쉬운 상태의 모습으로 변화된 지금이 좋다.

지금의 모습은 기체로도 여전히 액체로도 그리고 고체를 품은 상태의 세 가지로 함께 존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격리기간이 끝나면 우리는 서로 꼭 껴안을 것이다. 다시 아이들과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고 서로를 쫒아다니고 시끌 거리다가 조용하다가를 반복하며 여러 가지 형태로 사랑을 표현하며 살 것이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도 하고 하나가 아닌 모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늘 변할 수 있는 같은 원소를 가진 존재임을 깨닫고 같지만 또다른 나를 보기를 즐기며 읽고 쓰기를 연습한다. 보글보글 매거진에 글을 쓰며 내 삶과 생각이 뭉근히 끓여가는 변화의 과정을 기록도 해본다.


변화는 모두에게 필요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인연도 관계도 사랑도 내 자신도 모든 것이 변화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려고한다. 우리가 보는 아주 광대한 시간 속 짧은 이 순간의 변화의 의미를 눈치채기는 힘들지만 분명 신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뜻을 담아 우리를 병들게도 하고 또 낫게도 하면서 바이러스가 지나쳐 가며 우리를 변화하도록 만들 것이다.


변화는 결국 좋은 것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변화는 나만의 보글보글 수프를 만드는 것.

서툴렀던 수프도 그윽한 수프도 다 사랑의 과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수프를 품에 안은 듯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격리자의 일주일- 매일 소풍가야할 날씨




4월 3주
의성어 의태어로 글쓰기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의 <할머니 사랑 보글보글>

*매거진의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라면만 끓일 수 있다면 '보글보글 닭볶음탕'>

4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