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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May 06. 2022

모란이 모라는데?

내가 피어나는 어떤 날

모란이 모라는데?
(내가 피어나는 어떤 날)


어린이날 아침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어린이날이다! 우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눈을 뜨고 엄마에게 안기기 전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동생을 깨웠다. 마치 자기 생일 인양 아주 기분이 좋다. 오늘의 계획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특별히 오늘 뭔가 하기로 한 것도 아닌데 딸이 너무 신나 하니 슬그머니 부담이 되었다.


오월에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다. 자라는 자신들이 신이 나서 저절로 노래하게 되는 날. 아이를 그렇게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신나는 자람이 멈추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새로운 꽃을 피우는 것에 주저하게 되는 것일까?


아이에게 갖고 싶은 것을 물어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은 어린이날이라 설레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유시간, 아무것도 누구에게도 배울 필요 없는 그 자유로운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어린이날에 어린이를 마음껏 어린이로 있게 했다.

빨리 어른이로 배우게 해서 키우는 게 아니라

충분히 어린이로 자라게 했다. 시간을 누리게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오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오후에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아침도 점심도 마당에서 먹었다. 오월은 모기가 아이들을 물지 않아 마당에서 놀기 가장 좋은 때다. 아빠와 캐치볼을 하는 아들의 웃음소리가 좋다. 자꾸 울타리 너머 탐험하려는 고양이 민트를 옆에 잡아두고 책을 읽는 딸은 좋아하는 작가 '로알드 달' 책들을 쌓아두고 벌써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본다. 오월의 햇살이 딱 좋은 오늘, 마당의 몇 안 되는 꽃들을 곁에서 더 많이 보고 싶어 나도 꽃 옆에 의자를 바싹 옮겨두고 앉았다. 은은한 향이 느껴졌다. 어제 갑자기 커다란 봉오리를 터트린 모란(목단)이 오늘 활짝 피었다.



그리고 조금 늦게 피어 나를 더 오래 행복하게 만들어 준 튤립들을 위에서 찍었다. 튤립 안 꽃잎의 색과 수술 암술의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균형을 보고 있자니 돌릴 때마다 다른 모양의 신비로운 만화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 얼굴만  모란은 흐드러진 꽃잎 때문에 규칙을  알아볼  없지만 분명 튤립처럼 완벽한 균형과 질서로     속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들은 환경에 따라, 흙의 상태에 따라 꽃잎의 수가 달라지기도 하는  같다. 처음 옮겨 심고 나면 꽃을 피우기보다 환경에 적응하느라  몽우리만 달려있는 채로 피지도 않고 한해를 넘겨버리기도 한다. 2  심었던 작은 모란이 작년에 커다란 봉오리로 기대 모았다. 하지만 끝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그대로 시들어버렸었다. 수많은 겹꽃잎을 틔우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모아야 했지만 환경이 바뀌고 얼마  되어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모란은 그때 자신을 열면   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향기를 맡은 후 너무 싫다고 도망갔던 딸/ 아..나는 너무 좋은데..


준비가 되었을 때 꽃은 자신을 드러낸다. 자연 속 꽃과 나무와 동물은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을 고치지 않는다. 그저 원래 그 꽃망울 안의 꽃잎 수만큼 피고 진다. 꽃 속 완벽한 오각형의 구조와 삼각형의 겹쳐진 각도는 절묘하게 균형이 잡혀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 피어나는데 그 자체로 아름답다. 어느 꽃이라도 말이다.


꽃들과 나무는 퇴고하지 않는다. 그저 몽우리 속 자기가 가진 그대로도 완벽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 있게 핀다. 자기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에고가 없다. 그렇게 피워낸 초고로 키 작은 꽃이든 커다란 꽃송이든 그대로 그곳에서 완벽하게 서있다.


나는 나를 채우고 수형을 잡아가는 휘어진 어떤 나무 종류처럼 글을 피워내려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처럼 어린 꽃이 자기가 펴 낼 수 있는 만큼의 봉오리를 만들며 큰 나무가 되기 위해 한 해 한 해 땅을 먹고 해를 보고 기다린다. 꽃망울만 크게 맺은 채 그 해를 넘기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 얼굴만 한 큰 꽃 하나를 겨우 만들고 뿌듯해하는 해도 있을 것이다.


 모란(목단)은 한 두해 살이 풀에서 피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되는 꽃이다. 천천히 오랫동안 자신을 키워가는 나무로 올해도 내년에도 작은 키를 천천히 키워가며 얼굴만큼 동그란 꽃을 피워낼 것이다.  오월의 푸르름 속에 신이 나서 해를 향해 겹 분홍꽃을 흔들어대고 있는 모란은 어린이날 신이 난 아이와 똑같아 보인다.


나도 아이처럼 모란처럼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이래야 한다는 법칙들을 벗어던지고 나면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글을 아름답게 피우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다시 읽고 고치는 수고를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점점 더 다른 곳으로 가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 그 자체는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진리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임을 아직 깨닫지 못하기에 그러하다. 닿지 못하는 그곳에 가려는 욕망으로 나는 어리석게 고치고 또 고쳐본다.

나와 꽃이 다른 이유이다.



꽃이 없는 나무들도 그렇다. 연둣빛 반짝이는 작은 잎들이 수도 없이 새롭게 피어난다. 그들은 연둣빛 이파리 한 장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수많은 여린 글들이 묵은 이파리들 위로 빼곡히 빈 곳을 채우며 자라 간다. 그리고 다시 여린 잎은 묵은 잎으로 자신을 버리고 또 버린다. 숱하게 옷을 벗어던지고 나서야 나무의 모양이 갖추어진다. 그렇게 조금씩 성숙한 나무로 되어가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햇빛을 보려 빈자리로 이파리를 움직이는 자연스러움이 아름답다. 수없이 더듬거리며 공간을 찾고 하늘로 뻗는 흔들리는 나무의 가지들이 꼭 팔과 다리로 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 같아 애잔하다. 인공적으로 고쳐져 코가 세워지고 주름이 펴진 똑같은 얼굴의 글이 아닌, 멋진 누구와 닮은 글도 아닌, 자연스러운 자기만의 팔과 다리, 거기다 굵게 패인 주름도 가진 글을 나무처럼 꽃처럼 사랑으로 피워내고 싶다.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아이들처럼 자유로운 순간을 채워 피워내고 싶다.


휘어진 꽃과 나무의 가지런한 매무새는 그들이 사랑하는 태양을 향한다. 그저 솔직하게 드러내는 피움과 시듦에도 죄책감은 없다. 완벽하려는 의지가 없다. 누구보다 예쁜 모양을 갖추려는 애씀이 아니다. 그저 사랑으로 그를 향해 있을 뿐이었고 사랑, 그것만이 그들이 삶이었다. 다음 해에 다시 낼 새잎이 자신을 더 높이 데려다줄 것을 알기에 그저 오늘의 사랑에 솔직하고 자유롭게 잎을 펼친다.


잎을 펼치듯 꽃을 피우듯 나 자신을 여는 날.


나의 글을 피워내는 어떤 날이다.


내가 피어나는 어떤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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