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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Sep 02. 2022

나는 혼자 아주  '잘' 논다

나만의 혼자 놀기


어젯밤 저는 집에 있는 의자를 모으고 테이블을 붙여서 자리를 만든 후 상상 속 밤의 데이트를 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올 손님들의 환한 미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그들이 마실 잔들을 이쪽저쪽에 놓고 테이블 세팅 놀이를 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혼자 꺼내 줄을 맞추어 보는 한밤중의 저의 놀이입니다.



평소 저녁 설거지가 끝나면 녹초가 되었던 제가 잔을 놓으며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후, 초를 켜 둔 밤, 한동안 빈 접시, 빈 글라스와 함께 혼자 놀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새벽에 책을 읽을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밤의 독서는 즐겁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쓰는 감사 일기도, 1년째 되어가는 온라인 글방의 매일 글쓰기도 밤이면 글이 술술 나옵니다. 독서와 글쓰기 모두 테이블 세팅처럼 제가 하는 혼자놀이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독서와 글쓰기가 혼자 놀이일까요?

혼자 테이블을 세팅하고 상상 속에서 손님을 초대하는 놀이를 하는 저는 과연 혼자놀이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너무 좋은 책은 혼자 보기 아까울 때가 있습니다.

만약 정말 재미있는 글을 썼다면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집니다.

알맞게 익은 무화과를 한 박스 사게 되면 맛있을 딱 그때 누군가와 함께 맛보고 싶어 집니다.

우리끼리 잘 차려놓고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축하하고 위로하고 싶어 다정한 이를 초대하고 싶어 집니다.


밤의 테이블 세팅은 물론이고, 독서와 글쓰기야말로 혼자 하는 놀이이지요. 각자의 방에서 자신만의 책에 빠지고, 글에 빠져듭니다.

그 혼자 하는 놀이를 가끔 함께 모여 할 수는 없을까요?


그래서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혼자 놀기 달인들인 저의 글방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우리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함께의 의미는 충분하지만, 이번 만남에는 제가 한 가지 특별한 제안을 했습니다.

읽은 (흔적남은) 책을 서로 돌려보자고 말입니다.

그동안 여러 다른 독서모임을 해오면서 혼자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책을 함께 만나 읽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함께 글을 나누는 친구들이 읽었던 흔적 많은 책을 내가 본다면 어떨까? 라구요.

마치 같은 공간에서 책을 함께 읽는 느낌일 것 같지 않나요?


그래서 일명 '내 책 여행 보내기'라는 모임 글을 썼습니다.


모임에 가져올 준비물은 '내가 본 흔적 많은 책'입니다. 1년 동안 친구 집으로 여행을 보낼 책을 골라오는 것입니다.

아끼는 책이라도 걱정 없어요. 돌고 돌다 돌아올 테니까요. 하지만 그 책이 내 손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함께 읽은 친구들의 흔적과 메모가 덧붙여져 세상에 없는 특별한 책으로 변해있을 거예요. 멋진 소식들을 책갈피 사이사이에 끼워 잔뜩 뚱뚱해져 있을 책의 여행을 기대하며 모임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쓰는 동안에 저는 상상 속에서 혼자 놀았습니다. 내 손을 떠나 다시 읽힐 책들의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밑줄 친 문장에서 같이 눈물이 흐를 친구들, 내가 못 본 단락에서 누군가는 한참을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졌습니다.


각자 혼자 읽는 책, 혼자 긋는 밑줄, 혼자 남기는 낙서가 더 이상 혼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친구의 밑줄과 메모에 남겨진 혼자 놀이의 흔적을 또 다른 곳에서 혼자인 내가 받아 그 혼자놀이를 엿봅니다.

혼자 글방에 글을 올리면서 나만의 혼자 놀이가 모두와 함께 노는 놀이가 되는 순간을 꿈꾸었습니다.

혼자 있는 밤의 빈 접시가 모두를 위해 채워지는 순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집으로 와주신 글방의 친구들과 함께한 모임은 제가 상상한 그 모습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일 년을 각자의 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혼자 쓴 글을 온라인에서 함께 나눈 사이입니다. 서로의 글 아래 답글로 다정한 편지를 보내던 우리가 이제 상대의 손때와 흔적이 묻은 책에 메모를 남기고 줄을 그으며 나의 흔적을 더해 다음 친구에게 여행을 보냅니다.


책들은 새로운 친구들의 품으로 몇 번 더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글을 보는 사이에서 서로가 남긴 책 속의 흔적까지 따라가며 함께 읽는 사이로 깊고 특별한 우정을 쌓아 갈 것입니다.


완벽히 혼자 하는 놀이지만 서로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저는

모두와 '함께 모여' '혼자  놀기' 

같이 놀고 싶었던  같습니다.


각자 혼자 '잘' 노는 사람들이 떠나보내는

'내 책 여행 보내기' 놀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되지 않으신가요?



9월 1주
보글보글 글놀이
"나만의 혼자 놀기 비법"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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