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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03. 2022

혼술

소울푸드=BMW-S

어려서부터 주정뱅이를 자주 접하다 보니 술은 항상 분노의 대상이며 악마의 피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살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맞이듯이 나도 질풍노도 시기에 악마유혹에 빠져버렸다. 하지만, 누구나 술독에 빠져 산다는 대학 때는 악을 멀리한다는 신념을 보이며 적당하게 흘려보냈고, 졸업 후 사회에서도 모두를 위한 회식에서만 한두 잔 마시는 선에서 적절하게 관리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마흔이 되던 해,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가 주님 앞으로 나를 전도했다. 전도사를 따라 주님 앞에 서니까 그때까지 사탄 가면이 벗겨지면서 영롱한 용안을 알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주를 찬양하게 되었고 어느덧 년의 시간이 흘렀다.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마츠다 부장(일본 주당이 오사카 술집 탐방)과 성시경의 먹을 텐데(노래하는 주당이 맛집 핑계로 술을 실컷 마심) 그리고 주락이월드(기자 주당이 모든 술을 )가 술술술 나오게 설정되었다.



사실 주량은 형편없다. 소주는 마시 BMW-S(Beer Makkoli Wine Sake)가 주종목인데, 맥주는 500cc를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며 1,000cc 정도면 취기가 오른다. 막걸리, 와인, 사케는 조금 마시지만, 두세 잔 마시면 발음이 새면서 술기운이 몰려온다. 그렇다고 술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거나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실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취해서 정신을 잃은 적도 없다. 주로 좋은 음식에 곁들이는 술을 좋아하는데, 음식과 페어링 한 술을 하나의 음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진정한 내 소울푸드는 BMW-S가 맞다. 혼까지 흔드소울푸드 강렬한 유혹 뿌리치기 쉽지 않다. 래서 억제를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는데, 극단의 조치로 저녁 식사를 하지 않거나 술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까지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한 주에 이틀 정도 함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시끌벅적한 술자리나 회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술과 함께하며 인연을 잇는  좋지만, 새롭고 다양한 사람과 마시는 것보다 잘 아는 사람과 오붓하게 술과 음식에 집중하면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게 좋다. 특히, 아내와 둘이서 술자리를 갖는 게 가장 좋은데, 둘만 있을 때 진심으로 행복하다. 서로의 일과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지를 술에 담아서 목으로 넘기면 머리는 맑아지고 가슴속 깊은 곳에 남은 근심마저 말끔하게 사라진다. 매일 저녁에 아내와 함께 하고 싶지만, 주말부부에게 기회는 많지 않다. 더군다나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둘이서 집을 나와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래도 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노력하며 아무도 모르게 가끔 비밀 데이트를 즐긴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혼자 마시고 싶은 날이 있다.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쓰듯이 혼자서 술을 마시면서 상념에 빠지고 싶을 때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혼술 하는데, 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는 게 아니고 펍이나 식당에서 술잔을 홀로 채운. 위스키나 와인도 마시고 싶지만 주변에 마땅하게 다닐 곳이 없고 주량도 형편없어서 가볍게 맥주 한 잔 마실 장소만 찾게 된다. 혼술은 혼자서 차나 커피를 마실 때보다 크고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볍게 한 잔 하고 취기가 살며시 올라오면 감성이 풍부해지면서 평소보다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든다. 글쓰기 취미에도 큰 도움을 주는데, 글이 잘 안 써지다가 술이 들어가면 술술술 나오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혼술을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즈음 집에서 가까운 꼬치집에 처음 들렀는데, 들어가기 전까지 엄청 고민했다. 예전부터 꼭 하고 싶은 마음에 굳은 다짐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몇 분이냐고 외쳤다.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과 배꼽 사이로 검지 손가락 다소곳이 펴서 직원에게만 보여주고 가까운 2인석에 재빠르게 앉았다. 아무도 관심 없는 상황에서 주변을 살피는 내가 느껴졌다. 그래도 발을 들였으니 돌아갈 순 없어서 꼬치 모둠과 함께 맥주 한 잔을 시켰다. 홀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는 전혀 부담 없었는데, 혼자서 술을 마신다는 행위가 궁상맞다는 선입견이 가득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혼자 술집을 가기는 어렵다. 주변을 둘러봐도 혼술 하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 마시고 싶을 때는 밥집에 가서 맥주를 한 잔 시킨다.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면 강력한 청량감에 갈증과 근심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



나에게 혼술은 혼자서 하는 행위의 정점이다. 지지리 궁상도 맞지만, 홀로 감성이 풍부해지는 즐거운 시간이며 난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스스로 담대해진다. 외롭거나 쓸쓸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허전한 감정은 다시 주변 사람을 찾는 동력이 되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도 깨닫게 해 준다. 지금껏 주와 악으로 다가왔던 술의 정체가 언제쯤 밝혀질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 표지 : 아내와 함께 했지만 혼술 같은 사진


** 이번 주 글은 두 가지 목적으로 작성했습니다. 하나는 보글보글 주제인 '혼자 놀기'이며, 다른 하나는 일산 독립 책방 너의 작업실 글쓰기 모임 9월 자기소개글 주제 '소울푸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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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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