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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Sep 09. 2022

겨우 참외 두 개 수확한 추석이지만

나누고 싶은 명절, 추석

민족의 큰 명절 추석에 대해서 현대에 사는 나로서는 처음에 정말 쓸 것이 없어 괴로웠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음력 팔월의 한가운데 한가위는 그야말로 풍요로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왕이 먹거리를 베풀고 잔치를 열고 활쏘기 시합을 하기도 했으며 백성들은 상을 받기도 하며 흥겨운 이야깃거리가 가득했을 것이다.


여자들은 한 달 전부터 사람들을 두 패로 나누어 옷감을 짜는 길쌈을 했고, 추석 때 겨루어 승부에 지는 쪽이 벌칙으로 음식을 장만하는 어른들의 시합이 펼쳐졌을 것이다.

마을 대항 씨름대회가 벌어지고 이웃마을 아저씨를 이기는 내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기쁜 고함소리와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이웃마을까지 왔다가 모래밭에 넘어진 아빠를 보고 엉엉 울었을 아이들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그 흥분된 분위기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추석은 한 해 농사의 마무리를 즐기고 다음 해를 기원하는 의식이었고 마을의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잔치와 놀이의 날이었다.


주말과 행사 기간에 들르면 민속놀이도 즐길수 있는 일산 밤가시 초가
집 근처 민속 문화재에서 노는 아들은 과연 제기차기 신동이 될것인가?

그런데 현대의 추석은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선물을 손에 들고 이동하느라 아주 들썩거린다.

쇼핑이 풍요로움을 주는 것일까?


현대의 추석은 풍요로움을 스스로 키워내기 힘들다. 돈을 주고 사서 선물하는 풍요로움도 물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땅에서 나는 자연의 선물을 서로 나누어 갖는 것이 이제는 무척이나 간단해지다보니 버려 추석이나, 집안 제사나, 다른 명절이나 모두 다 비슷해져 버렸다.




우리 집에는 풍요로움을 키워내기에는 코웃음이 나오지만 작은 텃밭이 있다. 봄에 상추를 조금 심어 뜯어먹고, 토마토를 심어두었지만 대체로 그냥 두고 신경을 못쓰고 있었다. 장마  잡초가 뒤덮고 정리를 해주어야  시기에 남편은 잡초를 뽑지 말라고 나에게 부탁을 했다.

관리를 해주고 돌보아주어야 할 텃밭에 오히려 잡초도 뽑지 말라고?


알고 보니 남편이 언젠가부터 ‘잡초 농법’에 빠져들었던 것이었다. 화학비료나 다른 인공적인 것을 주지 않고 잡초와 함께 키워내는 농법을 실험하고 싶어 했다. 아직 나는 그 내용을 모른다. 하지만 그냥 방치와는 분명 무엇이라도 다르겠지 하고 기대를 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가관이었다. 방울토마토는 잡초와 섞여 어디가 토마토인지 알 수 없었고, 중간중간 떨어진 백일홍 씨앗 때문에 난데없는 꽃이 한중간에 피어있었다. 또 덩굴식물 그늘을 만들고 싶어서 내가 모종을 심어 두고 잊어버린? 여주가 나뭇가지 지지대를 훌쩍 넘어 울타리 밖 옆집으로 돼지꼬리 같은 더듬이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게으른 농사꾼인 우리 두 사람은 뒤늦게 그물망을 2층 딸의 방 창문에 연결해 덩굴식물이 타고 갈 수 있게 해 주고 땅을 기어 다니는 키 큰 토마토를 걸어주었다.

그런데 여주 덩굴을 옮기며 뭔가 까실한 다른 종류의 덩굴을 발견했다. 우리는 오이인가? 전에 심었었던가? 갸웃거리며 노란 꽃을 두고 보기로 했다.


그리고 바쁜 집 내부 일로 뒤쪽 텃밭은 또 잊었다. 남편이 알아서 한다고 잡초를 뽑지 말라니 가끔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동네 부끄러울 거 같아서 자꾸 보기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얼마 전 남편의 '음식물 쓰레기 실험장' 상황을 슬쩍 구경하러 텃밭을 보던 중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으음? 이건? 호박도 아니고 뭐지? 오이 덩굴인 줄 알았는데 오이라기엔 넘 뚱뚱해!



검색해보니 참외였다. 그것도 두 개나!

심은 적도 없는 참외는 가끔 먹다가 던져두었던 참외에서 알아서 자란 것이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참외 두 개, 그리고 그 뒤에 비밀스럽게 여주 하나가 숨어있었다.


땀이 키워야 하는 열매지만

농부의 땀이 없이도 자연에서 알아서 나는 열매는

과연 어떤 맛일까?

화학 비료를 먹고 몸뚱이를 키워 자란 과일이 아닌

진짜 음식물 쓰레기와 지렁이가 만들어낸 진짜 흙을 먹고 자라는 참외는 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지만 뒤늦게 열린 참외와 여주는 아직 익지 않았다. 앞마당의 대봉감은 해거리라서 얼마 열리지도 않았다. 거기다 약을 치지 않아서 그나마 있는 감도 송충이의 습격으로 다 떨어졌다. 그래도 올해는 모과나무가 힘을 내주고 있지만 아직 언제 익을지 서리가 내릴 즘에 가장 향이 좋은 노란색이 될 거라 한참 더 남았다.


농사를 지었다고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게으른 우리 집 농부들은 올해 추석 가져다 드릴 농산물이 하나도 없다.

우리 집에서 나온 수확물로 추석명절 가족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장에서 사서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같은 <조화로운 삶>까지는 우리는 너무너무 멀었다. 하지만 실험이라는 것은 희망이 있다. 언젠가 멋진 결실을 맺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실패가 수없이 반복되어도 즐겁게 수확물 몇 개 없는 텃밭을 다시 가꾸어 볼 것이다.


추석 (秋夕) - 가을 저녁

가을의 보름달빛이 가장 좋은 날, 언젠가 남편의 잡초 농법이 성공하면 땅이 만들어준 선물을 가지고 가서 가족과 이웃과 나누고 싶다.

(텃밭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으신 이웃분들, 남편의 실험을 부디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바라며 주변에 드릴 뭔가를 또 시장에서 사 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

가족 카톡방에 참외 소식을 전했더니 큰 아주버님께서 답글을 써주셨다. 같이 신기하다고 하는 찰나,

갑자기 남편이 끼어들었다.


3 남중 막내인 남편이 10살 많은 큰형에게

“뒷 밭에 던져놓으면 열매가 생기네요~ㅎㅎ

다음에는 돈이랑 금을 던져놔야겠어요 ㅎ”

하니 아주버님이 한술 더 뜨신다.

“그거 해보고…… 알려줘요”



가족이 모이면 이렇게 흐흐 웃을 수 있는 농담이 오고 간다. 먹다가 나온 아보카도 씨앗을 키워 줄기가 길게 커지는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한다. 시댁 옥상에 자라는 화분의 꽃을 자랑하기도 하고 외국에 계시는 작은 아주버님은 화상 그룹 통화로 현지의 계절과 날씨 소식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코로나로 그동안 절대 모이지 말자고 하셨던 시부모님이 이번 추석에는 드디어 문을 여셨다. 나도 막내로 자라고 남편도 막내라 시댁에서는 너네가 뭘 할 줄 알겠냐며?  이번 추석도 뭐 하지도 말고 그냥 오라고 하셨다. 여쭈어 보아도 형님들이 다 준비해 가져 간다고 겨우 배만 사 오라고 하셨다.


서투른 농부에 서투른 막내는 무언가 나누고 싶은데 마음만 가득 들고 추석, 오랜만의 가족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풍요롭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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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주
“슬기로운 한가위 생활”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 유정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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