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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10. 2022

추석은 추억만 남아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피어오르는 마을 길 옆에 간판도 없는 허름한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닫이 문 유리창으로 안쪽을 들여다봐도 빛이 들지 않아서 실내는 어둑하다. 진열대에 식품은 거의 없고 주인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쓸쓸하게 버스정류장 역할만한다. 가게 건넛편에는 붉은색 이층 건물이 위태롭게 서 있는데, 잔뜩 녹슨 양철판에 둘러싸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다. 기둥과 창고 형태는 갖추고 있지만, 낡고 허술한 문은 부서진 채 열려있고 내부에는 오래전에 방앗간이었다는 흔적만 남았다.


방앗간 앞으로 이어진 소로 길을 따라 오분 정도 걷다 보면 청포도가 가득 매달린 과수원과 밤알이 꽉 찬 밤송이로 뒤덮인 나지막한 구릉이 나타난다. 구릉을 넘어서 밤나무골을 지나면 논 열 마지기 정도에 적당히 넓은 개활지가 펼쳐진다. 논두렁을 따라 걷다 보면 논 뒤로 작은 공소가 우뚝 선 언덕 밑에 아담한 시골집 한 채가 눈앞에 나타난다. 시골집 앞에 서면 언덕 너머로 마을 어린이들이 다니는 상록초등학교 지붕이 보이고, 학교 옆에는 학교를 세운 소설 상록수 작가 심훈의 생가도 잘 보존되어있다. 매년 추석만 되면 풍성한 추억을 만들어준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에 대한 기억이다.


부곡리는 아버지 고향이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까지 부곡리에서 십오 년을 지냈고, 그 후로 육십 년을 타지에서 살았지만, 늘 부곡리를 고향이라고 말한다. 나는 인천 남동구 간석동 달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명절을 제외하고 시골 살아 본 적 없지만 시골을 생각하면 인천의 달동네 보다 먼저 그려지는 부곡리이다.


매년 추석이 되면 시외버스를 타고 부곡리 방앗간 앞에 내려서 캄캄한 밤하늘 달빛에 의지한  논두렁을 타고 시골집까지 걸었다. 늦은 밤 시골집에 도착하면 작은 방에 짐을 풀고 사촌 형들 사이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 되면 누군가 기도문을 읊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연도를 하는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왔으며,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기도가 싫어서 졸린 척 이불을 싸맸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아버지에게 끌려 할아버지 무덤까지 다다르면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시골집 옆 오솔길을 따라 공소 방향으로 몇 걸음 올라가다 보면 한 편에 할아버지 무덤이 있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할아버지가 계신 무덤 앞에 잘 차려놓고 다 같이 절을 했다. 국민학교 오 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할아버지 무덤에 합장했고 그해 추석부터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도 준비하고 절도 여러 번 했다.


비슷한 추억을 십여 년 동안 이어오다가 시골집에 살던 큰아버지와 숙모가 사촌 형과 누나를 따라 천으로 올라 간 다음에는 더 이상 추석에 시골로 내려가지 않았지만, 그나마 추석 전  벌초를 위해서 가끔 들렀다. 벌초할 때는 평소에 하는 일없이 집에 기거하던 아버지가 낫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낫질도 가르쳤는데, 살면서 유일하게 존경심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낫질을 다하면 봉분 잡풀을 손으로 잡아 뜯으며, 고아니 어쩌니 하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탓하며 구시렁거렸는데, 부모 없는 아이가 보고 싶다고 보채는 모습처럼 비치기도 했고 철도 없어 보여애잔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아버지는 지금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되고 평택항한진항을 잇는 서해대교가 세워지면서 서너 시간 이동하던 추석 귀성길이 한두 시간으로 짧아졌다. 하지만, 십 년 전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 납골당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으로 모두 옮긴 다음에는 부곡리를 다시 찾을 일없어졌다. 그나마 추석 때마다 찾아가며 부곡리의 시골 향기를 느끼면서 머릿속에 새겼는데, 눈에서 멀어지면서 추억도 사라졌다.


유년시절, 달동네에서 학교를 오고 가며 회색 빛 시멘트와 검은 아스팔트에 갇혀 지내다가 추석이 되면 황금빛 논과 밭, 누런 볏짚단, 황토로 바르고 초가를 씌운 뒷간과 돼지우리로 부터 스며든 누르스름한 분위기에 취했었다. 마치 저녁노을 빛으로 세상이 물들어 따듯하게 느껴질 때처럼 낯설면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추석 때마다 눈으로 코로 귀로 느꼈던 완전한 시골이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잊힌다.


'추억은 바람을 타고 언젠가 흩어질 텐데, 울어도 소리쳐봐도 모른 척 버리려 해도 있지 못할' 부곡리 언젠가는 기억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불현듯 떠오르는 시골에 대한 추억이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시골로 변절했. 그나마 나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녀올 수 지만, 추석  뒤늦게 코로나에 걸려서 건강이 쇠약해진 아버지 혼자 갈 수도 없고 가고 싶어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벌초할 필요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는 부곡리는 오직 추억만 남았을 뿐인데, 추억마저도 사라지기 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한번 다녀와야겠다.




* 이전 글 : 시골과 안 어울리는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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