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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Sep 23. 2022

기타를 부수는 아버지

아버지의 뒷모습

음악 하는 남자를 만나고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부모님이 허락하셨을까'였다. 사실 3남 중 막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10년 터울의 늦둥이니 부모님의 마음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셨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막내아들이 결혼해서 가족이 된 막내며느리다. 시부모님은 늦둥이인 남편을 넓은 마음으로 키우셨듯 막내며느리인 나도 똑같이 부족하더라도 많이 기다려 주시고 배려해주신다.

 

결혼을 해서 좋았던 점은 남편이라는 사람을 얻는 데다, 시부모님도 생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시아버님, '아버지'라는 존재가 나에게 생긴다는 점이 좋았다.


부정(父情)의 온도가 궁금했다.

어느 정도의 뜨거움일까?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아버지, 그 가슴에 손을 대보고 싶었었다.


내 책에 남편과 아버님의 이야기를 썼었다


공부 잘하는 집안의 대들보 큰아들이 기타를 잡았다. 아버지는 기타를 부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 크고 잘생긴 둘째 아들이 그룹사운드를 한다고 기타를 잡았다. 아버지는 다시 기타를 부쉈다. 10년 뒤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가 또 기타를 잡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고교생 막내아들의 밴드 공연 시작 전 갑자기 나타나셨다.
 
"밥은 먹고 하는 거냐?"
하고 물으신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저녁을 사주시곤 말없이 가셨고 아들의 가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막내는 그 이후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대상 수상을 계기로 음악 하는 것을 당당히 허락받아 더 이상 집에 기타가 부서지는 일은 없게 되었다.

<좌뇌 우뇌 밸런스 육아> p200, 차영경/ 브레인스토어



아버님께서는 형들을 말렸었지만 결국 또 음악을 하는 막내가 당신 마음에 들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몰래 하는 아들의 공연 소식을 듣고, 그냥 있을 수가 없으셔서 갑자기 찾아가셨던 아버지의 마음.

이왕 공연할 거면 친구들도 모두 든든히 먹고 하라고 밥을 사주시고 말없이 가버리신 아버지의 사랑의 온도는 내 마음도 뜨겁게 덥혔다. 결혼 전 들었던 이 이야기만으로 뵙지도 않았던 아버님이 어떤 분인지 알 것 같았다.    


(기타를 부신 이야기는 남편이 결혼 전 나에게 과장해서 말해준 일화였고, 실제로는 큰형에게 기타도 선물로 사주실 정도로 아버님은 반대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서야 들었지만 아버님은 젊은 시절 연극을 하셨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무대에 오르는 피는 어쩌면 아버님에게서 온 것이었을 것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글 친구네와 우리 가족이 함께 공예박물관에 갔던 날이었다.

그녀는 앞에서 걷고 있던 나의 아들과 남편을 사진에 담아 보내주었다. 쨍하게 찍히는 휴대폰 카메라의 흔한 사진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덕분이었을까?

자신의 뒷모습이 다르게 보였던 남편은 사진을 멍하니 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무엇을 찍어도 그녀만의 다정함이 담겨있는 사진


“ 아… 이제 내가 아버지구나..”


아이들의 아빠가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지금 아버지임을 깨닫는다니, 농담이라도 깜짝 놀랄 소리였다.

그동안 자신이 아빠라는 것을 몰랐다는 말인가? 정말?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지낼 때는 잘 느끼지 못하다 사진을 보면서 놀랐던 걸까?


최근 제법 키가 자란 아들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모습은 자신이 한 남자가 아닌 아버지로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아마 남편은 아버님이 생각났을 것이다. 부정(父情)으로 심장이 뜨거워져 본 적 있는 아들이 이제는 자신이 아버지가 된 것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작은 손을 따뜻하게 잡고 아이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걷고 있는 그 속도가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아직은 작은 아들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닮은 내 아이 쪽으로 약간 돌린 그 시선이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자신의 뒷모습을 본 뒤에 떠오르는 사람은 당연히 아버지였을 것이다. 덥혀진 가슴에 자신의 사랑을 더해 아들에게 더 진해진 부정을 내리 전한다.

아버님- 남편- 아들로 전해지는 사랑은 지켜볼 때마다 신기하다. 말하지 않고도 전해진다. 부자간의 사랑, 때로 말하지 않아야 더 뜨겁게 느껴진다.

뒷모습은 조용해서 뜨겁다.




하지만 가끔 아빠와 아들은 말하고 또 말한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부자는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야구 수다를 떤다.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공을 던지고 치고받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축구에서 야구로 취미가 넘어간 아들이 더없이 반가운 (야구 쟁이) 아빠는 요즘 진지하게 아들과 야구 연습을 한다. 엄마는 모르는 비밀 수신호를 정해 사인을 주고받다가 서로 말없이 공을 던진다. 말한 마디 안 하는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척척 소리 날 만큼 글러브 속으로 공이 들어간다.


부자의 시간은 엄마로서는 결코 알지 못하는 아빠와 아들 사이로 흐른다.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시아버님과 남편 사이의 비밀스러운 사랑의 말없는 신호들은 내리내리 전해지고 있다.

서로의 글러브를 향해 왔다 갔다 조용하지만 정확히 전해지는 야구공처럼 흐른다. 그가 연주하는 기타소리처럼 아름답게 흐르고 있다.


 감사합니다.


보글보글 글놀이
9월 4주
"아버지"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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