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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24. 2022

아빠가 아버지에게

BGM. 바보가 바보에게(이석훈 ver.)

잘 지내시죠. 아버지.

코로나 완치 이후 통화도 못했네요. 요즘 들어 부쩍 안부가 궁금해서 락을 해야 할지 고민했는, 고민하는 자체가 웃깁니다. 그래도 부모가 편찮을  걱정하는 것을 보니 본성이 나쁜 자식은 아닌가 봐요.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정신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조차 제대로 못했으니 그냥 불효자로 정리하시지요. 어차피 우리 부자지통화 시간이나 내용에서 따뜻함을 찾긴 어려울 테니까요.


사실 며칠 전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답니다. 늦은 밤, 자다가 잠시 깼는데, 누나 전화번호가 부재중 번호로 찍혀 있더라고요. 가슴을 쓸어내렸답니다. 지금껏 살면서 슬픈 일은 누나를 통해서 전해 듣다 보니까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새벽이었지만 누나에게 다시 전화했고, 짧은 순간에 무척 긴장했어요. 예전 일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벌써 오 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완치하신 거네요. 여하튼, 반복된 상황 때문에 트라우마가 되었답니다. 그나마 다행히 누나가 전화를 금방 받았고 잘못 눌렀다는 대답 안도했어.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프면 매번 누나를 통해 들었는데, 자체가 불효일 수 있겠네요. 


결국 전 불효자가 명백한가 봅니다


제가 글과 가까워지면서 조금 달라졌는데, 그중 하나는 평생 건네지 못할 말을 이렇게 글로는 남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좀 지엽적이긴 한데, 아버지께서 읽않았을 법한 책장쌓인 고전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긴 거죠.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독서하거나 글 쓰는 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책장 가득 모시고 사는 고전의 존재 이유모르겠더라고요. 예전에는 전혀 관심 없었지만,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군에서 받은 푼 돈으로 고전을 사서 오십 년 넘게 먼지 쌓인 채 그 자리에 놓여 있는지 궁금하네요. 더군다나 아버지께서도 고전이 가만히 놓인 기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셨으니까 둘이 묘하게 겹쳐 보이더라고요. 비난은 아니니 끝까지 들어 보세요.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 북 토크에서 저서마다 아버지와 불편함을 표현한 부분이 보여 제가 이유를 물었답니다. 부녀관계가 녹록지 않은 표현과 부정적인 내용계속되지만 작가는 고유의 사랑 표현이라 하더라고요. 의아했는데, 우리 관계를 돌아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어쩌우리 부자는 원망보다는 서로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이 가득하지만, 거칠고 다르게 표현하는 데 익숙해진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혹시 세월이 흘러 병들고 지친 아버지를 보면서 드는 측은함이 아닌지도 곰곰이 생각했는데,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미안한 마음클 수도 있고요. 아버지께서도 평생 해준 게 없는 자신을 스스로 원망하면서 자식에 대한 애잔한 마음만 생길 수도 있겠지요. 아쉬운 마음이 모여서 서로를 아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우리도 모르는 어색한 표현이 계속해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한때는 아버지께서 훈육조차 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사춘기 때 여러 번 부딪쳤던 기억이 살아났답니다. 능력이 없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었지요. 그 후로 더욱 작아진 아버지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나 알아차렸지요. 늘 소신껏 산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아우성은 메아리가 될 수 없듯이 결국 제대로 소 한번 펼치못한 채 천천히 식어가는군요. 제가 아빠가 되고 나서 아버지 같은 아빠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 모습이 저에게서 반영되더라고요. 당연히 좋지 않은 방향이니까 너무 뿌듯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실 이 편지는 아버지에게 부칠 리 만무하고, 보내봤자 읽지도 못하실 테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듯하네요. 둘 다 불편한 것보다는 한 명은 편해야지요. 억울하실까 봐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제가 아버지 손녀들에게 편하도록 조성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러고 보니 살면서 아버지한테 편지 한 통 받은 적 없네요. 훈시훈육도 가물가물하고 도대체 부자간 무엇이 오고 갔는지 궁금합니다. 한참 때 거나하게 취해서 저를 앞에 앉히주사를 선물했던 기억많은데, 가슴에 와닿거나 뇌리를 스친 단어조차 없군. 동네방네 소리 지르며 다니는 모습만 보이더니 어느샌가 쇠약해져서 목소리도 잘 안 들릴 정도라서 안쓰럽긴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아버지 모습을 생각하는 중에 큰 딸이 저에게 묻더군요. 일 더하기 일이 냐고. 둘째도 옆에서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라고요. 자기도 아는 문제이니 아빠가 당연히 알 텐데, 답을 말하자 두 아이가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했지요. 그때 제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모습이 생각났어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어쩌면 제 아버지와 우리 아이들 아빠가 비슷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듯 무심하게 받치는 게 아버지나 아빠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란 생각도 합니다. 다른 게 있긴 하죠.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하고 몰랐고 저는 안 하는 척과 모르는 척하니까요.


지금껏 살면서 이끌어 준 적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준 적도 옳고 그름을 알려준 적도 없는 아버지께서 걸어온 길이 비난받거나 조롱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주변인이나 친인척에게 눌리고 밟혀도 저는 아버지 삶을 존중합니다. 물론 그렇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소신껏 잘 사셨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당당하셔도 될 듯하네요. 저도 조금 비슷한 길을 갈 겁니다. 바보 같지만 자식에게만이라도 존경받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거든요. 그렇게 계속 바보처럼 지내보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오랜 시간 생각하다 보니까 귓가에 맴도는 노래가 하나 있네요. 아버지가 군산 촌놈이라고 빈정거렸던 가수 박명수의 명곡이랍니다. 노래가 좋아서 다른 가수도 많이 커버했는데 이석훈버전을 많이 듣고 유독 제 귀에 들리는 부분이 있어요. 노래 제목은 바보가 바보에게 인데, 큰 의미는 없어요. 비난하는 거 아닙니다. 한 소절 들어보세요.


나 이제 목숨을 걸고 세상 아픔에서 지켜낼게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아버지는 현생에서 못하셨지만, 제가 세상 아픔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방관해주셨잖아요. 군대에서 쓰는 말 중에 임무형 지휘라는 말이 있어요. 하급자가 폭넓은 자유를 갖고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임무 수행할 수 있는 지휘 방식입니다. 물론 상급자의 의도 아래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관찰하여 조언하는 역할이 있어야지요. 


아버지 훈육 방식이 아주 조금 닮았어요. 개입하지 않는다 정도만 비슷한데, 정도의 차이가 매우 크죠. 그래서 남들이 비난하지만 아버지 방식으로 잘 지켜낸 게 맞을지도 모르지요. 여하튼, 좋건 싫건 존경하던 어긋나던 우선 아빠로 아버지로 있어야 뭐라도 하죠.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제가 언제라도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세상에 존재해주셔서 그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추신. 아버지로 존재하는 일, 그렇게 살아있는 일, 그걸로 충분합니다.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 펫 슈나이더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신발이 발가락들을 받아들이는 일
비누가 접시 위에서 조용히 말라가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존재가 어디 있는가?




* 이전글 : 차영경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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