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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Feb 24. 2023

귀가 한쪽뿐인 여자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해드립니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골라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굉장한 공감능력이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상대방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채는 대화는 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서비스 직에 근무해 왔던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수없이 바뀌는 선배 후배들과 비행을 다니며 십여 년 눈치껏 맞장구를 쳐왔던 나는 내 앞의 사람이 완벽히 만족하지는 않겠지만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맞장구 쳐주는 능력은 제법 늘어있었다.


감정노동자들이 가식적인 응대를 계속하면 할수록 마음의 병이 커지는 데에 비해 나는 오히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다. 부산 사투리를 쓰면서 무뚝뚝했던 이전과 달리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의 외향적인 사람들이 쓰는 말들을 하는 내가 좋았다. 평생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사람들과 행복한 인사와 좋은 말만 한껏 나누는 분위기 속에서 살기를 꿈꾸었다.



그렇지만 가끔 엄마집에 가서 사투리를 쓰는 환경으로 다시 돌아갈 때 나는 다시 무뚝뚝한 말을 쓰는 나로 금세 돌아갔다. 상냥한 말을 건네고 싶은데 이상하게 엄마 앞의 나는 그다지 말이 별로 없는 딸이 되었다. 영문을 모르시는 엄마에게 이유 없이 죄송하기도 했다.


나는 사투리와 표준어의 두 가지의 말을 쓰는 것을 넘어, 영어 일본어 같은 외국어를 쓰는 여러 수십 개의 내 버전이 있었다. 가만히 보니 나는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나라는 사람이 쓰는 말이 크게 바뀌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 앞에서 더 좋은 말을 하는 내가 되었고 그것은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냉정하거나 무심한 내 버전에는 정말 답이 없다며 스스로 실망할 때도 많았다. 고민만 하기보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내 마음은 수백 수천 가지의 나의 모습 전부 다 나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훨씬 편해졌고 자유로웠다.


마음에 드는  버전으로 살고 싶다면
그와 함께 있을때  모습이 
마음에 드는가?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계속 만나기만 하면 된다.

하리가 하나 혹은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하나 혹은 두 개의 개성으로 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순전히 그의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이야. 인간은 누구나 열개의 백 개의, 천 개의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야.

헤르만헤세 <황야의 이리> P176, 민음사


일할 때의 내 말은 상냥함과 밝은 톤이 몇백 배 치솟았고 그 기세로 육아에 들어갔더니 목소리의 높이가 하늘을 찔러댔다. 아이를 찍는 동영상에서 들리는 내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매번 스스로 놀라기 일쑤였다.


하지만 퇴사 후 아이들과 집에서 보통의 삶을 이어가니 나는 특별히 애를 쓰지 않는 내 모습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그러다 책을 읽고 본격 글을 쓰기 시작하니 오래 전의 무뚝뚝이가 올라왔다. 샹냥함 200배였던 과장된 콧소리는 조금씩 낮은 톤으로 바뀌어갔다.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설명하려 하거나 지적하는 말보다 그냥 눈빛이나 말없이 포옹만으로도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냥한 말을 과도하게 많이 쓰는 직업을 가졌었던 나는 이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상냥한 말) + (과장 없는 진실함이 담긴 말)을 삶 속에서 무기처럼 자주 꺼내 쓰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글 쓰는 온라인 친구들이 생겼고 그들과의 교류는 상냥의 다른 버전인 말 아닌 '다정함'을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 과다한 행복한 인사만 건네는 예의상 하는 말, 처세술 같은 말,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사회생활용 안부인사를 건넬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만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글로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좋은 말만 하는 글이 아니다. 글로 나는 그들이 나에게 하는 말을 듣는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글 속에서 나는 그들의 큰 용기를 발견하고 감동한다. 용기 없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그들이 해준다.  다정한 인사말도 듣는다. 글 쓰는 사람들의 글은 말이 아닌데 나는 그들의 소리 없는 말을 듣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새로운 귀가 생겼다.

들리지 않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새로 생겨났다.


그래서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말을 듣고 싶다는 것이다.
오늘 오후, 겹겹이 가려진 꽃잎을 벌린 라넌큘러스의 말을 듣는다.


사진으로 나에게 건네는 말,

그림으로 나에게 건네는 말,

글 속에 감춰둔 사랑의 말,

내 글에 반응하는 한 줄 호흡의 말,

보이지 않아도 머물다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침묵의 말,

그런 말로 표현되지 않는 다정한 말들을 들을 수 있는 귀가 나에게 생겨났다.


결코 말로 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 속에 숨겨둔 비밀의 말,

궁금함이 담긴 안부 인사말도,

왠지 멋대로 알아챈 것 같은 암호 모양 말들,

완벽히 감추어둔 것 같지만 다 보이는 슬픔의 말,

터질듯하게 차올라 꽉 누르고 있는 분노의 말들 까지도 들을 수 있는 귀가 나에게 생겨났다.


이전의 나는 행복의 다정한 말만 반응하는 귀만 가졌었다. 그런 말로 내 행복이 결정되고 그런 말을 주고받는 것 만이 서로에게 주는 가치 있는 선물이라 느꼈다. 하지만 글을 쓰고 깊은 교류를 나누는 동안 내 귀가 한쪽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여러 수천 개의 말을 나보다 더 잘 해독하는 잘 듣는 귀를 가진 다정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배웠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듣는 다정한 귀로 세상의 말들을 들으려고 하다 보니 점점 알게 되었다. 듣기 싫은 아픔의 말도 내 귀로 들어낼 줄 알아야 기쁨의 말에 더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 주 다정한 이들과 다녀온 춘천 <오월학교> 스테이

많은 말들로 공감할 수도 있지만 고요한 침묵 속의 공감을 함께 할 수 있는 관계는 그때부터 깊은 단계로 더 들어가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니까 말이 아닌 것으로 당신을 듣고 싶다는 뜻이다.


말은 마사키와 하나가 되어있었다. 하나가 될수록 진실하고, 하나가 될수록 허무했다. 말은 스스로 찢어지고, 가루로 부서지고, 쉽게도 초월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침묵은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히라노 게이치로 <달> 문학동네
주 5일 소설필사를 이어간지도 4개월째, 노트3권째..
공교롭게도 오늘 <너의 작업실>에서 문장배달 온 글 속에 말에 관한 글이 딱!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유정 작가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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