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정신병의 경계선

정신병이 없어지면 이전의 내가 없어질까? 나의 상담 경험담.

by 사람

'오래된 정신병을 치료하면 이전의 내가 없어지는 것 같다'. sns에서 대충 그런 글을 보았다. 그래서 나의 지난한 정신병 치료기가 생각났다. 확실히 나조차도 최근까지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이전의 내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다시 정신병이 발발하고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의 나는 어딘가에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의 존재를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더욱 커진다.


내 안에 숨어있던 나의 형태는 '정신병'이라는 이름들로 나열됐다. 간단히 말해 나의 병든 자아는 관계의 폐허가 된 시점에서 피어난 좌절감으로부터 발현됐다.

막 성인이 됐을 무렵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가 파탄이 났다. 친구들과 풀지 못한 사소한 갈등들은 괴롭힘으로 번져갔고 가족들에겐 나의 정체성들을 알린 후 폭력적인 언행이 오갔다. 그곳에서 살기란 지옥같아 내가 선택한 것은 단절이었다. 단절되자 고립되었다. 그런 괴로운 곳에서 병든 내가 선택한 길은 회피였다.


나의 병명(혹은 장애명)은 '회피성 성격-장애에 가까운-특성'이다. 관계의 거의 모든 면에서 나는 회피를 하였고 그로인해 파생된 고통마저도 습관처럼 회피했다. 느끼고 싶지도, 파헤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어린시절 견디던 공허감처럼 내 앞을 그저 지나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기에 나는 너무 자라있었다.


의존하던 친구의 추천으로 상담을 다니게 됐다. 상담을 다니던 중간중간 그만 다니고 싶다는 습관이 고개를 쳐들어 난관을 겪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견뎌내었다. 그것을 견디게 해준 것은 선생님과의 신뢰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나의 오래된 바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항상 병든 자아만 나의 정답이라고 느끼며 회피만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아래 돋아나 오래도록 죽어간 나의 진정한 바람은 '사랑받고 싶다'였던 것 같다. 사랑을 받고싶었다.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어 아낌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도 그것을 위해 낼 수 있는 용기도 없었다.


그런 내가 상담을 통해 자그마한 성공 경험을 해나갔다. 선생님께선 감정적인 기반이 되어주시며 내가 보는 관점을 수정해주고 좋은 방향으로 부드럽게 이끌어주셨다. 처음엔 아주 작게 시작했다.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못해도 산책을 하자는 약속부터 지켜냈다. 그 다음엔 지각해도 강의실에 들어가기, 과제 한 개 해보기,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보기...... 나는 작게 일어서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며 실패하는 연습을 해나갔다. 그러면서 나의 새로운 자아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존에 자라지 못했던 용기와 호기심이라는 나의 참자아는 회피하지 않고 꿋꿋히 작은 성공들을 이루어나가며 견고해졌다. 호기심이란 자아는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시는 것들을 끌어모아 나에게 적용했다. '지금 뇌가 트라우마 반응을 보여 나는 멍해지고 우울해졌구나', '지금 드는 극단적인 생각은 좀 더 몸을 진정시킨 후에 다시 생각해봐야지' 이런 건설적인 생각들이 쌓여갔다.


그리고 나의 회피적인 자아는 영구치가 난 후 유치가 빠지는 것처럼 내 선택지 안에서 점점 영역이 좁아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내가 사라진다'라는 생각은 치료의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였던 것 같다. 이 말은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감정에서 파생된 생각'일 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아를 잃을 걱정 때문에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미루거나 진행 중인 치료를 그만두거나 단약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가장 어두울 때가 지나야 태양이 가장 밝게 뜨는 것처럼 그 무서움과 괴로움 이후에 나는 한 발짝 더 나은 인간이 될테니까.


이 이야기가 어떤 이들에게 고무적으로 들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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