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인생 1회차 시작했단 말이에요.
원래 '미래'란 명사는 현실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것. 그것이 내가 원래 알았던 것 마냥 굴었던 것은 어떠한 치기였을까?
날카로운 바람을 뚫고 나갔던 곳은 편의점 알바처였다. 다른 점들은 차치하고서 나의 귀에 박혀버린 정보는 선임이 나간 이유가 '2년 만의 취업' 때문이라고 한 것이었다. 그것을 듣고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취업을 하면 '미래'가 나의 손에 얼추 잡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이다. 일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 앞으로의 관점이 좁아진다는 편에 가깝겠지만, 그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구덩이를 무시할 순 있을 것이다.
그렇담 나는 지금 어떤 구덩이에 파묻힌 것일까? 학교에 다닐 때와 지금의 나는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환경이 바뀌었다. 그러니 시야가 달라졌다. 뭐랄까, 구덩이에 파묻힌 것은 똑같으나 그 자리에 당장 잡히는 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가장 다른 점일 것이다.
'무언가'를 찰흙으로 비유하자면 어떤 모양새를 잡으려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이를테면 졸업부터 시작해 당장의 정신병에서 오는 공포를 이겨내는 것, 이것저것과 이어진 관계들, 하루가 멀다 하고 주어지는 과제들, 나가야 점수를 받는 강의들. 그것들이 그때만큼은 아주 버겁고 지겨웠지만 구덩이에 있다는 생각이 나지않을 정도로 바빴던 것이다. '나'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재료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원래 있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있으니 당장 있는 곳이 어딘지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제. 내가 있는 곳은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좁다. 더 커지고 싶지만 요새를 넓힐 용기는 아직 없다.
그래, 나에게 용기가 없다. 원래 있던 안전하고 포근한 요새를 부수고 더 커진 나를 담을 수 있는 곳을 재건하면 좋겠지만 원래 있던 곳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다. 요컨데 주마다 주어지는 달콤한 용돈과 휴식. 당장 알바처를 찾고 돈을 벌 수 있지만 험한 일은 하기 싫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더 나은 직장을 구하고 싶다는 알량한 마음가짐. 그런데 이런 태도로는 직장에서도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병원에서는 나에게 너무 심한 기준을 들먹이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어떤 시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나에게 가혹하게 굴면 아예 못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왜, 어려운 문제를 풀기 전 기초를 다듬을 때 자꾸만 간단한 공식에서 틀리는 나를 견뎌야하는 것처럼, 취직을 하기 전의 좀 더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한심한 나'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한심하다는 말은 듣기에 너무하니까, '말랑한 나'로 정의해야겠다) 애초에 말랑한 내가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 오픈 월드 게임에서 초보인 나에게 갈 수 있는 맵이 너무 많다면 나는 그 게임을 하기도 전에 진이 빠질 것이다. 나에겐 가진 것도 별로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몇 개 없는데 선택지가 너무 넓어지면 내가 무언갈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만 나에게 복기될 뿐이다. 그래서 괴로운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