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죽음이 찾아왔다.

그들과 함께한 기억을 되짚으며

by 사람


고향 친구 3명의 연락처를 지웠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처지였고, 같은 sns를 했으며, 한 동아리에서 만났다.


나는 그때 당시 형제가 갈등 중 부당한 폭력을 행사했고, 개인적으로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가해자가 있던 집에서 자해를 하여 병동에 들어가기 직전, 아버지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원룸을 구했다.


그 이후에도 계획 없이 자퇴를 원했고, 우울하며 불안했다.

세상이 무서웠고, 동시에 나를 믿지 못했다.


그 친구들은 떠도는 내 곁에 있어주었다.

고민을 같이 얘기하고, 여러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기도 하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평상시 그들과 같이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를 전혀 돌아볼 줄 모르고,

괴로움이나 수치심이 고개를 들면 같이 얘기하던 사람이나 환경, 사회 탓만 했다.


그들과 나는 트위터를 했다.

sns 특유의 자극적이고 공포심을 자극하는 게시물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가 괴로운 탓은 어떤 것이던 모두 나의 정체성(성소수자, 여성, 정신병자)에 대한 혐오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우리 사회는 아직 혐오에 대한 지각마저 없으며, 폭력적인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단시간에 바꿀 수 있을 리도 없고, 나는 그 사회에서 일단 살아가야 했다.

무섭다고 도망치고 뒤에서 욕을 하면 누가 듣겠는가?

그리고 직장 외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건 실질적으로 주도권의 반을 쥐고 있는 건 나다.






이십 대 초반 몇 년을 얼어있거나 도망치고 다른 이들에 대한 부적절한 기대를 하며 실망하고 무력감을 느끼며 보냈다.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는 대충 알았지만 (돈을 벌고, 학교를 옮기거나 그대로 다니고...)


당장의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꾸 미끄러지는 궁극적인 원인을 무시하며

누가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의 목적을 살피지 않았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고 꿈 속에선 형제와의 기억이 머릿속을 난도질했다.






상담을 다니며 변화를 기약하는 건 쉬웠지만

기대 이하의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건 버거웠고,

습관을 유지하는 건 토가 나올 정도로 지난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선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미끄러져 다시 구덩텅이로 빠져드는 나에게 계속해서 응원을 보내주셨다.


어느 순간부터 나 또한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커다란 목표가 현실적인 목표로 바뀌고, 작은 성공이 겹겹이 쌓여갔다.


일상적인 습관을 어느 정도 유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어졌던 인연들이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여 조금 더 드물게 만나게 된 사람이 생겼고


쉬는 날 도서관을 가 공부를 하니 강의 후에 술 마시거나 남을 불평하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며


부모님과 다시 연락을 취하고 새로운 이들과 저녁을 같이 먹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때쯤 커다란 갈등이 생겨 한 명을 내 곁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그 후 연인이 생겼고,

연인과 옥신각신 역동하여 이면의 나와 마주하고 동시에 꿈을 발견한다.


그동안 밀려온 작고 큰 파동들에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나의 자리를 지켰다.


8년 간의 대학 생활 끝에 졸업에 성공하고


곧이어 연인의 자취방으로 상경한다.






그 이후에 한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그 순간 만큼은 친숙하고 좋았지만 일정 부분 꺼림칙했다.






나는 두 명의 친구들에게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진실 됨을 보여줬다.

고심하여 말한 것들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필요 이상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서로의 모습에 눈감고 침묵하는 예전 방식으로 되돌아오길 종용했다.


나 또한 그들의 모습 중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내 안에서 오려내어

그들이 결코 할 수 없을 크고 일방적인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그 기대만큼 실망과 상처로 고스란히 되돌아왔고






내가 다시 나를 돌아보고 상황을 되짚어 만나려고 했을 땐

그들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그들을 향한 애정의 수만큼 생채기가 났다.






"안녕히가세요.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관계.

혼자서 울고, 기도했다.






오늘의 나는 다른 인연들을 만날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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