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컨테이너 트럭에서 배운 세상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나의 시야를 넓혀준 사람들

by 데이터공방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겁도 없이 친구와 단둘이 ‘무전여행’을 떠났다. 강릉에서 기차를 내린 뒤 부산 집까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돌아가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이미 고3 수능 직후부터 두 번이나 무전여행을 완수(?)했던 경험과, 돈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로 걱정 많은 친구 녀석을 데리고 출발했다.


"정동진까지는 무조건 걸어가 보자. 그다음엔 차를 얻어 타든 어떻게든 집까지 가보자."


심플한 계획이었으나 출발 20분 만에 가방 무게에 굴복했다.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 차를 얻어 타고서야 겨우 정동진역에 도착했다.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라면을 끓이려고 정동진역 앞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해수가 섞여 나오고 있었다. 그 짠물로 끓인,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라면을 억지로 삼키고 벤치에 침낭을 깔았다. 새벽에도 끊임없이 도착하는 기차와 산책하는 커플들의 속삭임이 왜 그리 크게 들리던지. 부끄러운 마음에 깊게 잠든 척했던 그날 밤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는 ‘디지털 노역(?)’을 해준 대가로 따뜻한 잠자리와 복날 닭백숙을 얻어먹기도 했다. (내가 했던 일은, V3 를 실행시킨 뒤, "Y" 키를 계속 입력했던 단순 노동이었다...) 그렇게 세상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갔다.


걷다 지쳐 해안 도로 한복판에서 손을 흔들면, 지나가던 차들이 우리를 구원해 주곤 했다. 그중 가장 압도적인 크기로 다가왔던 건 컨테이너 트럭이었다. 거대한 차체를 급하게 멈출 수 없어 우리를 한참 지나친 뒤에야 선 트럭.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이리 와!" 하고 손짓하던 기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거운 배낭을 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아득히 높아 보이던 운전석에 올라탔다.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턱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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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화물연대 지역 부위원장이라 소개하셨던 그분은 뉴스 속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당시 언론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노조의 '무리한 요구'만을 연일 강조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릿속에도 '노조는 거칠고 욕심 많을 것'이라는 편견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분은 무뚝뚝한 겉모습과 달리 따뜻한 정이 넘치는 분이었다.


기사님은 차창 너머 펼쳐지는 동해 바다처럼,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들의 입장을 들려주셨다. 하청에 하청을 거치는 복잡한 다단계 구조 탓에, 도로 위에서 밤낮없이 일하는 기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턱없이 적다는 이야기였다. 그마저도 차량 할부금이나 유지비로 나가기 바쁘다고 했다. 차 한 대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며 중간 마진만 챙기는 업체들을 정리하고, 계약 관계를 단순화하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소리였다. 그저 조금 더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는 절박함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복잡한 중간 업체들이란, 혹시 누군가의 퇴직 후 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어둠 속에서 뒷돈으로 얽힌 관계는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사회 구조의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를 처음으로 엿본 순간이었다.


뉴스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짜 ‘삶’의 얼굴을 접하며 깨달았다. 언론 또한 특정 관점에서 보여주고 싶은 대로 사건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뉴스나 신문의 관점이 결코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며, 늘 주관적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카오산 로드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며 편견을 깨뜨렸듯, 그날 트럭 안에서 나는 또 다른 편견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그 경험 때문일까. 지금도 누군가 어떤 의견을 내면 습관적으로 반대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곤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공자가 말한 ‘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은 그저 편을 들어줘야 할 때조차 반대 의견을 제시해 상대의 맥을 빠지게 하기도 하니 이 점은 스스로 경계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습관만큼은, 미숙했던 스무 살 여름의 무전여행이 내게 남겨준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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