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문득 생각난 치앙마이의 맑은 하늘

치앙마이 생활기

by 데이터공방


☀️ '날씨가 좋다'는 말의 진짜 무게


"날씨가 좋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저는 치앙마이에 가기 전까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면 으레 내뱉는 가벼운 감탄사 정도로만 여겼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치앙마이의 짙은 파란 하늘 아래 서보게 되는 순간, 그 말은 비로소 제 몸 안에서 생기 넘치는 언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저절로 "아, 정말 날씨 좋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거든요. 그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만족을 넘어,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기분 좋은 고백이었습니다.

image.png <눈 뜨면 보이는 아침, 리브라 게스트하우스>



� 치앙마이에서의 겨울이 가르쳐준 것들


초등학교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귀가 따갑게 배우던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는 제게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냉난방비를 걱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다른 나라도 다 비슷하게 계절이 바뀌겠거니 하고 막연히 짐작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일 년 내내 찌는 듯한 여름일 것이고, 북유럽은 회색빛 구름에 갇힌 추위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그런 단편적인 생각들 말이죠. 하지만 치앙마이가 선물한 여름은 제가 수십 년간 한국에서 겪어온 여름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image.png <매일 찾아가던 쿤깨쥬스>



그곳의 여름은 찌는 듯한 불쾌함이 없었습니다. 햇살은 등줄기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해서 마치 피부 위에 뜨겁게 쏟아지는 모래알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습도가 낮아 끈적임이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뙤약볕 아래를 걷더라도 짜증보다는 오히려 시원한 해방감이 먼저 찾아오곤 했습니다. 땀이 나더라도 금세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려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었거든요.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하늘과 그 위를 한가롭게 떠다니는 몽글몽글한 구름은 볼 때마다 경이로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가던 길을 멈추고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비슷한 구도의 하늘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찍고 또 찍어도 그 깊이 있는 파란색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어 안달이 났던 기억이 선명하네요.


image.png <덜덜 떨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푸근했던 리브라게스트하우스 수영장>




� 날씨가 허락한 영혼의 자유로움


하지만 단순히 날씨가 맑아서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맑은 바이브를 완성하는 것은 주변의 조화로운 풍경들이었습니다. 길 양옆으로 길게 뻗은 울창한 나무들,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황금빛 지붕의 오래된 사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평온하고 여유로운 표정이었습니다. 날씨는 단순히 환경일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와 태도를 빚어내는 가장 강력한 조각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날씨를 탓하거나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기는 법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image.png <치앙마이에서 최고로 맛있던 피자집>


건기가 아닌 우기에도 태국의 날씨는 나름의 운치가 있었습니다. 여행 중 갑작스러운 스콜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릴 때면 저는 당황하기보다 근처의 아기자기한 카페로 몸을 피하곤 했습니다. 지붕을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따뜻한 타이 밀크티 한 잔을 앞에 두고 책을 읽거나, 느긋하게 마사지를 받으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저에게 계획에 없던 휴식이자 여유가 되었습니다. 그 잠시의 멈춤이 주는 안락함은 여행의 긴장을 풀어주는 비타민 같았어요.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날씨가 조용히 가르쳐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image.png <낮엔 노트북으로 일하고 밤엔 해바라기씨 까먹던 공용공간, 더원 콘도>



� 차가운 겨울 아침, 파란 하늘 사진을 꺼내며


다시 한국의 겨울로 돌아온 오늘, 날씨가 잠시 풀리는가 싶더니 기온이 다시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창밖에는 칼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종종걸음으로 길을 재촉합니다. 이른 아침, 무겁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를 몇 번이나 끄고 이불 속으로 다시 파고들었습니다. 눈을 뜨기 싫은 것이 아니라 방문을 여는 순간 맞닥뜨려야 할 그 서늘하고 차가운 한기가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일어나기 싫은 게 아니라, 이 추운 아침을 맞이하는 한국에서의 그 차가운 느낌 자체가 싫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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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깨닫습니다. 제가 치앙마이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맑은 하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것은 바로 날씨가 허락해준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습하지 않은 공기 속에서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는 신체적 자유, 그리고 밝은 햇살이 제 마음 구석구석까지 비춰 우울함을 걷어내 주던 심리적 자유였습니다. 날씨는 단순히 기온과 습도의 숫자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에 얼마나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우리는 저절로 너그러워지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게 되니까요.


image.png <므앙마이 시장>

유명한 스포츠 선수들이 왜 유독 미국의 마이애미나 캘리포니아 쪽을 선호하는지 이제는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화려한 연봉이나 도시의 명성만이 아니라, 매일 아침 자신을 반겨주는 따뜻한 햇살과 그로부터 얻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였을 것입니다. 반대로 영국 사람들이 어둡고 습한 날씨 영향으로 무겁고 우울한 선율의 노래를 많이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Creep' 같은 곡이 나왔다는 설명도 이제는 너무나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날씨는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고 때로는 삶을 버티게 하는 예술적 영감을 주며, 결국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짓는 가장 거대한 힘인 것 같습니다.






image.png <치앙마이대학교 스타벅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다시금 치앙마이의 하늘이 그립습니다. 영하의 찬 공기가 방 안을 맴돌지만 제 마음은 어느새 치앙마이의 그 강렬한 햇살 아래를 걷고 있습니다. 그때 찍어두었던 사진첩을 천천히 열어봅니다. 스마트폰 화면 가득 차오르는 짙은 파란색은 여전히 변함없이 투명하고 따뜻합니다. 사진 속의 제가 환하게 웃고 있네요. 그 웃음의 절반은 아마도 그날의 완벽했던 날씨가 저에게 미리 건네준 선물이었을 것 같습니다.

image.png <치앙마이게이트(남문) 토요야시장>


내일 아침에는 알람 소리에 조금 더 기운차게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한국의 겨울은 여전히 길고 춥겠지만, 제 마음속 한구석에 잘 갈무리해 둔 치앙마이의 햇살을 한 줌 꺼내어 아침 공기에 섞어보려 합니다. 추위는 살결을 파고들지언정 제 안의 자유까지 얼릴 수는 없을 테니까요. 어느 카페의 테라스 의자에 앉아 파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평화로운 감각을 다시금 조용히 소환해 봅니다.

image.png <치앙마이대학에서 마야몰 걸어가던 길가 분위기 좋은 가게>
image.png <견생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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