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떠날 거야, 항저우
愛_ 3
역시 항저우에 온 지 열흘이 채 안 됐던 입학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동기들끼리 회식을 한다면서 자꾸 ‘그럼 외할머니댁으로 가자’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릴까. 누구네 외할머니길래 이렇게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가도 되는 거지? 이런 오해를 하며 쭈뼛쭈뼛 동기들 무리에 껴서 식사 자리로 갔다. 아니, 이게 뭐람?! 식당 이름이 외할머니 댁이었다. 지금은 중국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外婆家(wàipójiā, 와이포지아)’라는 식당이다.
와이포지아는 杭帮菜(hángbāngcài)라고 항저우 음식을 파는 식당이다. 매장도 깔끔하고 서비스도 적당한데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나쁘지 않고 가격대도 좋아서 편하게 가기 좋은 식당이다. 엄청 뛰어난 식당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평균 이상이라서 딱히 어디 갈 데가 없으면 ‘와이포지아로 가자’라는 말이 제일 많이, 편하게 나온다. 그렇게 회식으로, 친구들 모임으로 제일 만만하게 가던 식당이었다.
항저우에 막 와서 지내던 3~5년 정도는 뭔가가 먹고 싶다면 대부분 다 한국 음식이었다. 중국 음식이 먹고 싶어도 하얼빈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먹고 싶었지 항저우에서 먹었던 것들 중에 뭔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정말 문득!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는데 그게 항저우 음식이었다. 세상에! 나 이제 좀 항저우에 사는 사람 같잖아!! 이걸 시작으로 요즘에는 제법 이곳에서 먹고 싶은 음식들이 많이 생겼다.
나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건 잘 안 먹는다. 그래서 아직도 못 먹거나 안 먹는 음식들이 참 많다. 그럼에도 이제는 중국 음식이 문득 생각나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다. 이게 뭐가 뿌듯한 일인가 싶지만, 이제 내 무의식도 이곳의 무언가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뿌듯한 것이다.
여전히 와이포지아는 나에게 편한 식당 중 하나이다. 모든 음식이 무난하게 다 괜찮아서 그런지, 보통은 ’어느 식당의 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와이포지아는 왠지 ’와이포지아가 가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이 있긴 하다. 비교적 최근에 제일 많이 먹었던 메뉴는 宫保鸡丁(gōngbǎojīdīng, 궁바우지딩)이다. 하얼빈에서 먹었던 궁바우지딩은 간장 베이스였던 것 같은데, 와이포지아의 궁바우지딩은 쓰촨식(川菜)으로 매콤하게 만든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항저우는 매운 음식을 잘 안 먹는 도시라서 매운 정도가 하향 조절 되어 맵찔이인 내가 먹기 딱 좋은 정도의 매콤함이다. 아주 내 취향이라는 말씀!
궁바우지딩 전에는 宫保虾球(gōngbǎoxiāqiú, 궁바우지딩이랑 비슷한데 닭고기가 아닌 새우튀김으로 만든다), 小炒肉(xiǎochǎoròu, 돼지고기와 매운 고추를 볶은 음식), 外婆小牛肉(wàipóxiǎoniúròu, 소고기를 큐브 모양으로 맛 좋게 볶아낸 음식)를 좋아해서 많이 먹었다. 적당히 신메뉴도 나오고, 그 시기에 유행하는 메뉴도 팔고, 웃기는(긍정적으로) 식당이다. 아마도 와이포지아는 나에게 진짜 외할머니 댁 같은 편안한 식당이 된 것 같다. 어쩌면 항저우를 떠나도 가끔 생각날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