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자아는 곧 여러분이 만들고 가꾸고 유지하는 집이며, 여러분은 곧 하나의 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여러분 각자는 하나의 신이며, 하나의 집입니다.
두 가지 관점으로 소개할 건데, 첫째로 자아를 집으로 보는 관점은 자아가 생겨나는 모습이 집을 짓는 것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집으로 묘사할 때는 자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집중할 것입니다. 자아의 가장 최초에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성인이 되어, 사회와 보호자의 "억압과 보호"에서 벗어나며, 소속감이 없게 되는 시기를 마주하게 될 때나 그런 시기를 눈앞에 두면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키르케고르의 말이 이런 점에서 나온 말이죠.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선생님들에게 쉽게 말해 억압받고, 보호받고,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억압과 보호 속에서 명령을 잘 수행하면 칭찬받고, 그러지 못하면 혼나게 되죠.
우리는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기존의 억압과 보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나를 찾아가면서도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아'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타인에 의해서, 소속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자아라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자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아라는 집을 지을 것입니다.
둘째로 자아를 하나의 신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건 아이러니로 인해서 이뤄지는 관점입니다.
'우리의 죽음'과 '세상'의 관계를 생각해 볼까요?
만약에 제가 죽는다면, 저의 입장에서 저의 죽음과 함께 이 세상이 사라지는 겁니다. 더 이상 제가 감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까요. 각자가 살아가는 세상을 각자의 감각과 지각, 인지되는 영역으로만 개념 짓는다면, 꼭 틀린 말도 아니죠.
당신의 죽음을 생각해 볼까요? 당신이 죽는 순간 더 이상 그 무엇도 감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건 반대로 당신의 기준으로 이 세상에서 감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으로 우리가 우리 세상의 신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관점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죽기 때문에 오히려 신일 수 있는 인간, 반대로 죽음을 극복하면 그것대로 신일 수 있는 인간. 우리 인간은 죽던, 영원히 살던 신일 수밖에 없는 개인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삶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세상을 신으로서 확장시킬지, 유지할지, 축소할지.
그리고 죽을 때까지 계속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했듯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입니다.
자아를 신으로 묘사할 때는 여러분의 자아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만들어낸 집이며, 여러분 자체가 신이니.
여러분은 살아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신격을 가지며, 여러분 개인의 세계를 확장시킬지, 유지할지, 축소할지 선택해야 하며, 내 마음을 어떻게 가꾸고 정돈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과정을 저는 여러분의 조력자로서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저를 믿고 따라오시면, 반드시 여러분을 하나의 집으로, 하나의 신으로 그렇게 하나의 성전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