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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혁재 Feb 01. 2021

공동체! 그게 왜 중요하지? (1)

[이기사] 함께 읽을 기사를 찾는 이 기사입니다!

이 기사 어떠세요..?




 마이클 샌델. 정말 모르기 힘든 이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한국에서 대유행을 한 덕분에 저자 마이클 샌델의 유명세도 함께 높아졌었죠. 누적 판매량이 200만 부를 넘겼습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 마이클 샌델이 직접 와서 강연을 하고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과 토론한 행사에도 참가했었는데, 연대 노천극장이 꽉 찰 만큼 인기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제가 이 책을 이해한 수준은 책을 향한 열정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D


그래도 '대학 수시 면접에서 물어볼 수도 있다.' '논술 주제로 쓰일 수 있다.'라는 섬뜩한 경고가 들려온 탓에 마이클 샌델의 성향만이라도 외우자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해!!'

                                                                      - 이 기사 (18)


공동체. 참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누군가 '야 공동체가 뭐냐'라고 물어본다면 사실 공동체를 정확하고 깔-끔하게 정의 내리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단어들은 많을 겁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새마을 운동을 떠올리실 수도 있고 부모님 세대는 반상회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글을 준비하면서 어머니께 '엄마 공동체 하면 뭐가 떠올라?' 물었더니 저희 어머니는 생협(생활협동조합)이 생각난다 하셨습니다.


'공동체'는 왜 중요할까요?


이 질문은 조금 생각할 시간을 요구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보다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답이 명쾌하게 안 떠오르는 것 아닐까요. 일이 끝나고 조용한 집에 혼자 맥주를 마시는 혼맥 문화가 자리를 잡은 사례가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공동체의 중요성'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잘 와 닿을 수 없는 내용일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달 21일 경향신문의 기획기사

"협소한 공정 논란 벗어나려면, 모두가 모두를 돕는 '관계적 존재론' 발전시켜야"

'중요한 것 같은데...왜 중요한지 설명하긴 어려운'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를 인터뷰한 이 기사는 "관계적 존재론"이라는 조금 생소한 단어를 소개합니다.


교수는 인터뷰에서 관계적 존재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관계적 존재론의 핵심은 단순히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

                   '나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 있다'

                        ‘모두가 모두를 도울 수 있다'

는 생각이다."


반대 개념인 "개별주의적 존재론"이란 것을 먼저 알면 관계적 존재론의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잠시 개별주의적 존재론을 살펴볼까요?


개별주의적 존재론의 또 다른 표현은 각자도생입니다. 남보다 나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태도를 뜻합니다. 때문에 경쟁이 익숙한 사회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 높은 직급! 


매 순간이 경쟁인 사회에서 사실 남을 챙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야 삶의 질이 높아지는 사회는 생각보다 남을 배려할 공간이 없습니다. 혼맥 문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치열한 경쟁의 공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에 있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해방감이 맥주 한 캔을 부르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개별주의적 존재론, 각자도생 사회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기사에서 교수는 한국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과 연결 짓습니다.


교수는 기사에서 사례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인천 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때 불거진 공정성 논란'에 대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취업 시장에서 청년들은 정규직이라는 굉장히 한정된 일자리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능력주의라는 경쟁 규칙을 꾸역꾸역 따르면서 어학능력과 자격증, 소위 스펙을 채워나갑니다. 인천 국제공항 정규직은 그 노력이 줄 수 있는 정말 괜찮은 보상 중 하나입니다. 답 없는 경쟁 생태계에서 허덕이는 청년들이 '비정규직 누군가는 자신과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부의 결정으로 정규직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비정규직이 감당해야 하는 불안한 고용안정성과 동일한 일을 하지만 적은 임금을 받는 불평등은 외면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쳐야 하는 문제를 고치려고 하는 데 청년들이 반발했다고 뭐라 할 순 없습니다. 비난의 화살은 청년들이 개별주의적 존재로 거듭나게 한 사회 구조로 향하는 것이 맞겠지요. 치열하게 경쟁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내야 겨우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타인의 불평등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교수도 협소한 공정 논란을 벗어나기 위해선 '관계적 존재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관계적 존재로 거듭나면 사람들은 "도움과 참여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이 가진 불평등에 공감하고 함께 바꾸자 할 여력이 생기는 셈이죠. 물론 물리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풍족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 감각 또한 한계가 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할 수 있을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있을지 또 모릅니다.  


이런 경쟁 사회, 각자도생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관계적 자아가 될 수 있을까요?


이 교수가 소개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해줬습니다. '뮤추얼 에이드'(Mutual Aid)라는 방식인데요. 외국 사례라 조금 더 공부해보려 합니다. 한국에 비슷한 사례는 없는지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2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D



경향신문의 이 기사, 어떠세요?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1202115005&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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