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다시 읽기에 앞서서

by 이혀갲

예능 프로그램의 존재 목적. 시청자들을 웃기는 것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근본적으로 '얼마나 웃기는가'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웃음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최고의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니겠는가. 그 이상에 대하여 프로그램을 분석의 대상으로 다룬다는 게 어려운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예능 프로그램일수록 사실 많이 부담스럽다. '무한도전'이 그렇다.


누군가의 학창 시절이, 누군가의 20대가, 누군가의 사회 초년기가, 누군가의 직장 생활이 깃든 무한도전이기에. 그것을 향한 분석이라는 게 어떤 이의 삶의 궤적에 올라타는 일일 수 있기에 참으로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이야기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지나갔거나, 혹은 지나가고 있는 시간에 머물러 있을 무한도전일 수 있어서 다시 이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고 이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적절한가를 고민하게 되는 무렵이다.


그럼에도 참 무한도전을 사랑했던 시청자 중 한 명으로서 학창 시절 토요일마다 챙겨보았던 그 시절의 무도와, 대학교 캠퍼스에서 혼자 밥을 먹고 싶은 날 밥동무가 돼 준 시절의 무도. 낯선 여행지에서 잠들기 전 틀어놓던 무도와 직장에서 일과 사람에 치어 지친 나를 위로해 준 무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보고 싶다는 마음 역시 드는 무렵이다.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표방한 인물들의 도전기다. 철창살 안에 갇혀 땅을 파고 탈출하는 일에, 목욕탕 배수구가 물을 빨아들이는 속도를 이겨보겠다 물을 퍼내는 일에, 소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열차보다 빨리 달리는 일에 비장했던 그들. 비장함을 억지로 부여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역할일 수 있겠으나 그 익살스러운 준비과정은 꽤나 진지해보였고, 진심으로 결과에 아쉬워하는 모습은 곧 그 무모한 일들에 도전하는 일을 어느덧 숭고하게 만들었다.


그 무모했던 도전들을 지나 스튜디오에서 즐거운 웃음을 만들었고, 본격적인 캐릭터 예능 형태에 접어들면서 수많은 도전들을 해나갔던 이들이다. 처음 무한도전을 접한 건 초등학생이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취업 준비를 할 때까지 함께 했고, 종영했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고 지내는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각각의 시점에서 목메던 여러 일들이 그렇게까지 결과에 슬퍼하고 힘들어했을 일이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슬슬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 무한도전의 도전들과 준비 과정은 우리네 삶과 다름없지 않을까.


회차가 넘어가면 그 고단한 준비과정을 다시금 새롭게, 또 재밌게 그렇지만 비장하게 보여주었던 이들. 그날의 웃음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쉬워한 이들을 꾸준히 봐왔던 게 어쩌면, 내 삶에서 그 중요도는 시간이 지날 수록 흐려졌지만, 그 때에 주어진 혹은 달성하고픈 목적들을 향해 가는데 도움을 줬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도전이 나이가 들어도 계속됐다면 방황하는 순간마다 깨우치는 소소한 의미들을 더 발견했을 수 모르나, 이제는 잠시 멈춰 있기에 그에 대한 아쉬움과 그동안의 감사함에 대한 헌사로 그들을 다시 읽어 보고자 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