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는 어떻게 시청자들과 친해졌을까 ①
거성, 돌+I 처럼 각각의 멤버들은 여러 별명과 장기를 뽐낼 때 정형돈이란 캐릭터는 한동안 그냥 정형돈이었다. 웃기지 않는 코미디언이란 한 코미디언의 별명은 훗날 그도 말하기를 꽤나 견디기 힘든 '부적응'의 상징이었다. 대기만성, 슬로우스타터란 말들이 있듯이, 처음이 쉽지 않은 이들은 주변에도 많다. 정형돈이란 캐릭터는 그 인간 군상의 한 모습을 TV에 내비쳤을 뿐이다.
어느 조직에서든 자신이 가진 역량을 펼쳐보이고픈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칭찬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굳이 타인에게서 인정받는 것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내가 보이는 역량에 만족감을 느끼고 그러면서 얻는 성취감을 누가 싫어할까.
한 조직에 적응해야할 때, 가령 학년이 올라 새로운 학급에 들어섰을 때 학업 성취도나 주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이 필요할 수 있다. 대학 생활에서는 교수님과의 소통 능력이나 동급생들과의 술자리에서의 유머러스함일 수 있고, 직장에서는 내가 해야할 일을 얼마나 잘 해야하는가가 중요할 수 있다. 소위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설립한 지는 도통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런 능력들을 갖추지 못 해 방황하는 시간은 참 고통스럽고 힘들고, 외롭다.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업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위 취재원으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어 매일 새로운 기사를 써야 하는 업계 특성상, 사교성과 정보 탐색은 기자 개인에 대한 역량 평가의 기초 재료인데 업계에 발을 담근 초반 성격과 참 맞지 않아 고통에 몸부림치곤 했다. 누군가는 그 역량을 발판 삼아 좋은 단독 기사를 써낼 때, 그렇지 못 해 조용하게 회사를 다니곤 했던 시절들을 되짚어 보면 나 또한 정형돈 아니었겠는가. 무언가 보여주어야 그 조직에 물들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강해질 수록 일하는 게 무섭고 다른 직장을 찾게 되고 위축되는 건 이제 다시 그 시절 정형돈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은 쌓였다.
검증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정형돈들의 서사는 한층 서글퍼진다. 예를 들어 채용의 문턱에 와 있는 정형돈이라면,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 순간에 내 능력에 느껴온 회의나 불안감은 그동안 자신에게 느꼈던 무력감과 한심함을 극대화힌다. 그 결과가 좋으면 가슴 아프게 한 감정이야 한없는 기쁨으로 바뀌겠지만 대체로 결과가 좋지 못 하기에 결국 나라는 사람의 한계를 체감하며 다시금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더 비참한 순간은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역량을 펼쳤다 생각했는데, '남들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가 돌아왔을 때다. '나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라는 말조차 다시 꺼내기 어렵게 만드는 그 냉혹한 평가들을 그럼에도 우리들은 견디고 견뎌왔다. 정형돈도 그래왔듯.
그 시절 정형돈이란 인물이 보여줬던 정형돈이란 캐릭터는 단순히 착해 보여서 호감을 얻었던 건 아닐 거다. 언제가 그도 웃음을 꽃피울 수 있음 좋겠다는 응원의 근저에는 동화된 자신에 대한 응원이었을지 모른다. 훗날 개화동 오렌지족, 엄정화 DISCO 코스프레에 이어 무도 가요제 성공 보증수표가 된 그에게 질투없는 찬사와 웃음이 따른 건 긴 시간 그에게 동화돼 온 우리였기 때문은 아닐까.
매주 토요일 나의 능력을 내보여야 했던 정형돈에게 무한도전은 매일의 일터이자 동시에 검증의 순간이었을 거다. 그 과정에서 무력감과 혹은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싸워야 했을 그가 무한도전에 적응하고 웃음을 만들어낼 때 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