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는 어떻게 시청자들과 친해졌을까 ②
극의 경계를 허문다는 건, 온전한 무대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도전이다. 무한도전 모내기 특집에서 카메라 뷰파인더는 멤버들 뿐 아니라 촬영을 하는 스태프들을 담았고, 이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폭우가 내리는 열악한 상황에서 촬영을 마친 뒤 "고생하셨다"며 연기자가 스태프를 대하는 따뜻함까지도 그대로 전파를 탔다.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대 위로 올려버린 셈이다. 극에 들어와서는 안 될 사람을 들여보내는 것은 몰입도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출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내용적으로는 당시 이장님의 추천으로 진행된 '논두렁 달리기'가 웃음을 자아내면서 흠잡을 데가 없는 방송 회차였다. 그 웃음이라는 만족스러운 결과만 내보내도 괜찮던 차에, 무도는 왜 그 과정의 고단함을 내다 보였을까.
'나 힘들어'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는 학습지 광고를 들으며 자랐고, 어머니 아버지는 '새벽종이 울렸네'를 들으며 자랐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모두에게 고난과 역경은 극복의 대상이지 굴복의 대상이 아녔다. 아프니까 청춘이랬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면 환자지 어떻게 청춘이냐'는 유병재의 일갈이 환호를 받게 됐지만 기본적으로 오랫동안 학습돼 온 '힘들면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말은 깊숙이 내재됐다. 그래서 아직도 힘들다는 걸 어떻게 올바르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고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때가 많다. 다만 정말 힘들 때면, 정말 참지 못 하겠는 때면 내 인간관계에서 이 징징거림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한없이 계산적으로 찾고 찾아 털어놓게 되는 것 같다. 힘듦이라는 게 그만큼 사적이고 털어놓는다는 게 한없이 이기적인 행위였다.
그 털어놓는 과정에서 그 힘듦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지만, 더 큰 행복은 돌아오는 감정이 공감일 때다. 나의 이기심에 털어놓은 고백에도 이해하고 품어주는 공감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따뜻한 위로다. 언젠가 또 나를 내려놓을 용기를 주는 따뜻함이다.
공감을 바란다는 게 '나 힘들어'를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걸 알아가면서 '공감 능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편안함과, '내 편'이라는 든든함. 점점 더 혼자인 게 익숙해지는 세상에서 이어지는 전화 한 통 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안정감 느껴지는 행복이다.
그럼 결국 내 주변에 나를 위해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면, 적어도 공감을 바랄 때 솔직히 털어놓아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니 힘들다는 표현을 단순한 징징거림으로만 볼 것은 아니지 않은가. 웃음을 만드는 일조차도 고난과 역경을 거쳐 힘듦을 느끼고 표현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원하는데. 내 인생은 웃음뿐만 아니라 '노애락'도 다 있는데 힘듦 하나 표현하는 게 뭐 그렇게 대수일까란 생각이다.
고난을 이겨내는 청춘들이 시대정신이던 때, 힘듦을 소박하게 그려내며 '우리 힘든 것 좀 알아달라'라고 솔직하게 말했던 그들. '힘들었는데, 힘들다고 털어놔보자'라고 결정할 수 있었던 그 용기가 고맙고, 동시에 그들이 시청자에게서 바랐던 공감을 (혹은 수줍음까지도) 내가 이해해 줬는지도 되짚게 된다. 역으로 내가 힘들 때마다 무도를 찾았던 걸 보면 그들에게서 공감받고 한 편이라 생각했던 것 같긴 한데, 나는 그들의 힘듦에 얼마나 공감해 줬을지, 나아가 공감능력을 키워오는 삶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