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무도는 어떻게 시청자들과 친해졌을까 ③

by 이혀갲

무한도전 뉴질랜드 편에서 하하는 형돈에게 어색함을 말했다. 캠핑카 옆 모닥불에 모여 앉아 서로를 향한 어색함을 말했다. 멋쩍은 웃음이 번지고 어디선가 기분 좋은 간질간질함이 그머니 올라오는 순간이 비쳤다.


하하와 형돈이 느낀 그 어색함은 곧바로 웃음 소재가 됐고, '친해지길 바라'라는 코너가 만들어졌다. 멤버들이 지켜보는 줄 모르고 둘이 식사를 해야 했고, 나중에는 대놓고 데이트를 하는 걸 중계당해야 했다. 비록 억지로, 억지로 친해지는 순간들, 마치 연인처럼 계단을 가위바위보를 하며 올라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시간들이 지날수록 그들도 시청자들도 서로가 친해지는 걸 느꼈을 거다.


그 회차에서 번지는 웃음은 이들이 친해지는 과정이 귀여워서 나오는 웃음일 수 있고, 어느 시점부터 서로가 친해지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오는 뿌듯함일 수 있겠다. 친해지는 과정에서 견뎌야 하는 어색함, 그 간지러움이 전달되면서 표현하기 어려운, 어디선가 나도 겪어봤음직한 그 행복한 순간들의 복기가 만드는 웃음일 수도 있겠다. 학창 시절 곳곳에 묻어있을 그 간지러움일 텐데 참 요즘은 느껴보기가 어렵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과 친해지는 게 쉽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 있을 사람들이 자기를 불편하지 않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관계가 번지고 번질수록 불편한 사람도 결국 곁에 둬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지만 '인간관계 확장기'가 멈추는 어느 시점부터는 굳이 곁에 두지 않아도 되면 조금씩 놓아버리곤 했다.


대학을 갓 입학한 때가 지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가 오면 인생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것처럼, 쓸데없이 무게를 잡고 사는데 이때부터 인간관계를 넓히려는 시도를 점점 안 하게 됐다. '먹고살기도 바쁜데'라는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생각들이 덮칠 때면, 인간관계에 쏟을 에너지가 그렇게나 아까웠다. 겉으로 상냥한 척 위하며 서로 말 섞을 시간을 줄이는 게 편했고 더 가까워질 법한 자리가 만들어지면 무수한 이유들을 대가며 피하는 게 상책이 됐다.


취업이 빨리 됐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사람에게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게 편해졌고 사교성의 감각은 무뎌졌다. 그런데 하필 사람을 만나도 정말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을 골랐다. 점심도, 저녁도 모르는 사람에게 만나달라 부탁해야 했고, 운이 좋아 자리가 만들어도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 생각에 이 난다.


누군가와 친해지기를 연습하지 않은 결과는 인간관계를 술에 의지하게 했다. 빠른 시간에 친해질 수 있다는 특장점은 무시 못 하나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하며 친해졌는지 다음날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고, 그 다음번 만남에도 여지없이 찾아오는 어색함을 이겨내려 또 술을 찾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단시간에 친해져야 한다는 직업적 강박은 아무리 사람을 만난다 해도 사람과 친해질 때 견뎌야 하는 감정과 시간에 한없이 무뎌지게 했다.


가끔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들에게, 정말 가끔,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냐'고 묻곤 한다. 실제로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어쨌든 서로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가 누군지'처럼 관심사를 공유하다 '누가 게임을 잘하는지' 장난을 걸기 시작하고 방과 후 수업을 함께 도망치곤 했다. 일련의 과정이 짧게 걸린 친구도, 오래 걸린 친구도 있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를 탐색하고 내가 조금의 상처를 줘도 털어낼 줄 아는 사람이란 걸 확신하고, 비로소 책임을 나눠 가질 줄 아는 존재가 된다는 건 지금 생각해 봐도 멋진 일이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 내 삶이 너무 바쁘고 경쟁에 지쳐서 그 친해짐의 시간을 갖기 어려울 거란 핑계를 자꾸만 내세우는 요즘이다.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를 최우선으로 인간관계를 접근하다 보니 상대에 대한 판단의 자료가 축적되기를 기다릴 여유도 갖기 어렵다. 그렇게 놓쳐버린 좋은 인연들 무도를 보며 아쉬운 건 왜일까.


견디면 단단해진다. 하하와 형돈이 무도 말미쯤 보여줬던 케미, 방송 밖 친함 정도를 생각해 보면 어색하고 간지러운 그 기간은 견딜만하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 같은 그런 관계, 그 또한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두며 견뎌왔기에 가능했을 건데 문득 그 과정을 겪던 시간이 그립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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