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배낭과 캐리어 5

by 서담

스위스의 평화롭고 고요했던 풍경을 뒤로하고,

기차는 점점 더 이탈리아 밀라노를 향해 달렸다.


창밖의 풍경이 조금씩 낯설게 변해가던 순간, 객실 문이 열리고 이탈리아인 직원이 들어왔다. 무표정하게 여권을 요구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살짝 긴장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나라로 들어가는 설렘이 가슴 한편에서부터 차올랐다. 내 여권과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는 직원의 시선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친구 중 한 명은 국경을 넘으며 여권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며, 농담처럼 내가 꾸며낸 이야기 아니냐고 말했지만, 내겐 분명히 존재하는 추억이었다. 여행이란 이렇게 사소한 순간마저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밀라노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와닿은 건 스위스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의 활기와 소음이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역사 내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밀라노라는 도시의 첫인상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패션의 도시답게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세련되고 멋진 옷차림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밀라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두오모였다.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압도하는 웅장하고 정교한 고딕 양식의 성당.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수많은 첨탑과 섬세한 조각상들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더 경이로웠다.


한참을 멈춰 서서 외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그저 감탄을 연발했다.




두오모 바로 옆에 위치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였다. 유리로 된 높은 아치형 천장 아래, 고급스러운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고른 피자 위엔 생선이 올라가 있었고, 혀끝에서 짭짤한 바다 내음이 강렬하게 퍼졌다. 내가 상상했던 치즈 듬뿍의 익숙한 맛과는 너무나도 멀었다. 다행히 같이 주문하였던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짠맛을 씻어 주었다.


갤러리아의 중앙 바닥에는 토리노의 황소 문장이 새겨진 모자이크가 있는데, 그 황소의 특정 부위에 발뒤꿈치를 대고 한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듣고 재미 삼아 한 바퀴 돌았다. 움푹 파인 바닥이 말해주듯 수많은 여행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나빌리오 운하 지구로 향했다. 어둠이 깔리며 더욱 활기를 띠는 이곳은 운하를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과 바에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혼자였지만, 용기를 내어 현지인들 틈에서 칵테일과 핑거푸드를 즐기며 밀라노의 밤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도시 전체가 주는 열정적인 분위기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내 마음까지 들뜨게 만들었다.


스위스의 차분함과는 다른, 조금 더 열정적이고 인간적인 이탈리아의 첫인상을 강하게 받았던 밀라노.

패션과 예술, 미식과 활기가 넘치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밀라노에서 가장 깊이 남아 있는 순간은 두오모 성당 앞에서였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에서 바라본 성당의 모습은 웅장하면서도 무엇인가 마음속을 흔들었다. 종교는 없지만 손을 모아 기도하게 만들었다. 일상의 고민과 걱정은 그 순간만큼은 아주 작고 하찮게 느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의 감동과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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