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긴스 Jul 28. 2020

독박육아 라는 아무도 모르는 길

오늘도 육아

"둘째가 있으면 같이 놀아"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가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우리 부부가 아이와 함께 놀고 있는 것을 보더니 하신 말씀이다. 아이가 하나뿐이냐? 혼자는 외롭다. 둘이면 같이 노니까 엄마 아빠가 안 놀아줘도 된다. 우리 딸은 애가 둘인데 이번에 셋째 또 가졌다. 우리 딸은 34살인데 몇 살이냐? 곧 마흔이라니 그제야 눈치 보더니 다른 말씀을 하신다. 사실은 처음부터 굳어버린 내 표정과  '34살이면 첫 애를 28살에 낳았겠네요. 그 나이면 저도 둘은 낳았어요'라는 내 속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났기 때문이겠지.
사실 이런 말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자주 들으면 웃어넘길 줄 알았는데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사람들 참 무례하다.'

임신했을 때 입덧이 매우 심했다. 흔히 토덧이라고 하는 걸 해서 조금만 먹어도 다 토했다. 물도 못 먹어서 레몬 탄산수나 탄산수에 매실액을 조금 타서 먹거나 해야 했고 하루 종일 바이킹 타는 기분에 뭐라도 먹으면 다 토해서 임신 중인데 오히려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어느 날은 토하다 토하다 피를 토해서 한밤중에 119에 실려간 적도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 대박이다. 원래도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데다 36살에 첫 출산이니 회복이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병원에서 집에 오자마자 배앓이를 시작했고 배가 아파 잠을 못 자는 아이는 30분 간격으로 깨서 넘어가듯이 울었다. 나중에 배앓이는 좋아졌지만 그때 수면 패턴이 다 깨져버린 아이는 낮잠도 30분 이상을 잔 적이 없었고 밤에도 통잠이란 걸 잔 적이 없다. "아기가 낮잠을 30분밖에 안 자면 어떻게 버텨요?"란 말을 이때 정말 많이 들었다.

남편은 회사 일이 바빠 10시면 빨리 퇴근하는 날이었고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일단 잠을 못 자는 상태가 1년 넘게 지속되자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 포도막염에 걸렸고 아기를 안고 있는 일이 많다 보니 하지정맥류에 걸렸고 출산 후 여성들이 많이 생긴다며 갑상선염에 걸렸고 얼마 전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종양으로 수술도 했다.
혼자서 아무 도움 없이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고 내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가며 딱 죽지 않을 만큼만 하루하루 버텨내는 날들이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이대로 다시는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우울증도 왔다. 어쩌다 남편은 주말에 좋아하는 영화라도 보고 오라며 아이를 봐주었지만 그뿐이었다. 집에 돌아올 땐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이미 가슴이 답답했고 집이란 곳이 편히 쉬는 곳이어야 하는데 나에겐 도망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리고 어딘가를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도 아이 없이 그저 혼자 있고 싶었다. 먹고 자고 씻고 싸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 편하게 밥 한 끼 못 먹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밖에서는 아기 띠를 하고 볼일 보는 것은 육아하는 누구나 겪는 일이니 일일이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낄 정도이다.
나는 두 번 다시 그것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런 나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몸으로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자신들이 대신 낳아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저리들 쉽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은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부부들도 많다. 둘째를 갖고 싶어도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저런 말을 함부로 하면 그 사람들은 또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독박 육아라서 힘들다고? 난 혼자 둘셋도 키웠어."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독박 육아를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라고 해도 본인의 기질, 성향, 체력에 따라 상황은 크게 달라지므로 난 혼자 둘셋도 키웠는데 뭐가 힘드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한여름 땡볕에 노동을 해도 머리 쓰는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몸 쓰는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애 둘셋을 키워도 할만한 사람이 있고 하나를 키워도 죽겠는 사람이 있는 거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다고 느끼는 건 똑같다고 해도 그걸 내 몸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 환경적인 문제도 들어간다.
잠깐 한 시간이라도 아이를 봐줄 친정이나 시댁이 근처에 있다면? 육아는 훨씬 할 만해진다.
동사무소나 은행에 잠깐 가는 것조차도 일을 처리하는 동안 아이가 유모차에 가만히 있을 리 없고 그러니 낮잠을 잘 때 간다.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좀 쉬고 싶은데 아이가 깬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 맡기고 다녀올 수 있다면? 가끔 밥이라도 한 끼 인간답게 먹을 수 있다면? 이건 생각보다 아주아주 큰 부분이다. 남편과 친정과 시댁의 손을 빌릴 수 있는 육아와 독박 육아는 분명히 다르다. 그것이 별 차이가 없다면 애초에 독박 육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아이를 잘 보지 않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태어날 때부터 그래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아이를 잘 보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육아는 여자니까 당연히 남자보다 하기 쉬운 것이 아니고, 남자도 여자보다 육아가 더 체질에 잘 맞는 사람이 있다.
또한 여자니까 태어날 때부터 모성애를 탑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부성애도 그에 못지않을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본인의 타고난 기질, 성향, 체력에 의해서 많이 달라지며
만약 남자가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을 한다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더 육아를 잘한다는 것에 손목을 걸 수도 있다. 육아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이냐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떻게 아이 넷을 키웠어?"

엄마는 어떻게 아이 넷을 키웠어?라고 묻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그 시절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고. 그래서 힘들단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살았다고.
나는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포기해야 하는 많은 순간들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엄마는 내게 그게 다 부모가 할 역할이지 힘들다고 생각하면 어쩌냐 하지만 부모라고 해서 어떻게 안 힘들 수가 있나...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한 당연함이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희생을 왜 전혀 알지도 못하고 대신해줄 것도 아닌 사람들이 강요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둘째 낳아라. 난 혼자서 둘셋도 키웠는데 유난이다. 이런 말들은 듣는 이에 따라서 굉장히 폭력적인 말이다. 그 사람의 육체와 정신과 환경으로 살아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말들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러니 앞으로 이런 폭력적인 말들은 제발 그만. 남의 마음도 배려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