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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경상 Mar 25. 2017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내에게 한 약속을 지키다

금요일이다.

이번 주말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그냥 계획 없이 주말을 맞을 때는 아무런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바쁜 주말을 보내야 하지만 기쁨이 넘쳐난다. 그냥 쉬면서 주말을 보냈을 때는 주말이 너무 짧게 느껴졌고 월요병에 시달렸는데 이것저것 주말을 바쁘게 보내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주말이 엄청 길게 느껴지고 월요병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냥 뿌듯하다.


이번 주말에도 우리 가족의 '미니멀리즘' 활동을 우선 실시하고 오래간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남해 미조 '미미 식당'을 방문해서 조금 이르긴 하지만 멸치회랑 멸치쌈밥을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남해 원예 예술촌'도 들릴 수 있고, '독일마을'도 들릴 수 있고, 물건의 '방조 어부림'도 들릴 수 있다. 내가 이곳을 언급하는 이유는 가족들과 나들이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나는 드론을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또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어떤 약속일까? 바로 봄나물을 함께 캐는 것이다. 아내가 쓸데없는 말을 한 모양이다. 당신 남편이 촌놈이라서 우리는 봄나물을 사 먹지 않고 캐서 먹는다고... 암튼 그래서 봄이 지나가기 전에 봄나물을 캐러 가기로 했다.


문제는 오늘 낮 회사에서 주말의 날씨를 얘기를 들었는데 토 ~ 일 모두 비가 온단다. 이런 6th 내 드론 비행은 어쩌나? 아직 드론의 기능도 완전히 다 익히지 못했는데 이렇게 드론을 처박아 두고 있으면 안 되는데 또 계획했던 다른 일들은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마침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자는 약속도 이행할 겸 오늘은 특별한 사항도 없어서 일찍 퇴근을 했다. 퇴근하면서 미리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라도 먼저 끝을 내고 싶어서 아내에게 어두워지기 전에 칼을 챙겨서 나오라고 했다. 집에 도착해서 대충 옷만 갈아입고 차를 몰고 죽천 강변으로 달렸다. 사천관광호텔이 가까이 보이는 곳쯤이 내가 알고 있는 달래 포인터이다.


아이들도 함께 데려가려 했는데 친구들 집에 놀러를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내와 단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날이 벌써 어둑어둑 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날씨가 흐려서 더 어두워 보였다. 마음은 급한데 달래 군락을 찾지 못해서 헛걸음을 한 것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수풀 아래로 숨어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쑥을 캐고 있던 아내를 불러서 달래를 어떻게 찾는지 또 어떻게 캐어야 뿌리를 상하지 않고 캘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아내는 쑥을 캐고 나는 달래를 캤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달래를 캐기가 힘들다고 생각이 되어서 아내에게 철수를 하자고 했다. 그래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녀석들을 모아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집 앞에서 이런 봄나물을 캘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죽천 강변의 논두렁 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농기계도 하루에 한두 번 다닐까 말까 하는 곳이라 안심하고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사천 바로 동강아뜨리에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내는 바로바로 손질을 하면서 쑥을 캐서 돌아와서 손질할 것이 별로 없다. 그에 비해 달래는 땅에 있는 뿌리째 캐어야 해서 흙도 씻어 내고 수풀 사이에 붙어 있던 이물질도 제거를 해야 한다. 딱 그기까지가 내 몫이다. 손질을 하고 나니 더욱더 먹음직스럽다.



이 정도면 달래 향이 넘쳐날 정도의 달래 양념장도 만들고 달래무침과 된장국도 끓여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오늘 저녁은 달래장을 만들어 밥을 비벼 먹기로 했다. 결정하고 양념장을 만드는 것까지 조금만 더 가족을 위해서 봉사하기로 했다.



지난번 달래 양념장으로 밥을 먹을 때는 달래 향을 겨우 맡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달래 향이 밥그릇에 넘쳐 난다. 큰 아들 녀석은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먹은 후 달래 양념장에 밥 한 그릇을 비벼서 뚝딱 비워 낸다. 심지어 아내가 한 숟갈 떠먹자 더 이상은 먹지 말란다. 



다행이다 아직도 몇 번을 더 달래 양념장을 만들 수 있겠다.


조금 아주 조금 일찍 퇴근해서 이렇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이런 방법을 나만 알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동료들이 모두가 다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쩜 이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요즘 내가 '미니널리즘'과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서 공부하고 실천하고 앞서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배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세상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인다. 예전에는 불만이었던 것도 이제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다. 그냥 우리 가족이라서 행복하고 사천이 시골이지만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이런 자연적인 봄나물을 맘먹고 바로 캐 먹을 수 있는 곳이라서 행복하고 나의 작은 노력에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에 행복하다.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입구에 해삼, 멍게, 개불을 파는 차가 보였다. 이심전심이었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은 뜻이 통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급하게 나오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느라 지갑을 챙겨 들고 나오지 못했다.

오늘 점심때 읽은 '궁극의 미니멀리즘' 책에서 가능하면 멀리서 유통된 음식이 아닌 그 지역의 음식을 먹어 보는 게 어떤가에 대한 좋은 점들을 알게 되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실천하는 것도 기쁨이다. 아저씨가 해산물을 손질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말도 건네 본다. 

 

몰랐던 사실인데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 한 가지로 아저씨와 나는 두 사람의 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거리가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것은 나는 남해에서 자랐고 바닷가에서 각종 해산물을 풍족하게 먹고 자랐지만 개불만큼은 결혼 전에 먹지 않았는데 아내가 개불을 좋아하고 잘 먹어서 먹게 되었다고 말을 건네자. 아저씨도 나와 같다고 한다. 남해에서 자라서 삼천포에서 해산물을 공수해서 인근에 팔고 있는데 아저씨도 어려서는 다른 것은 다 먹어도 개불은 안 먹었는데 아내 되는 분이 좋아해서 먹게 되었다고 한다. 나갈 때 집으로 돌아오는 둘째 녀석을 만나 함께 나갔는데 손질하는 동안 어찌나 쫑알쫑알 되던지... 덕분에 집으로 들어오던 다른 사람들이 뭐가 싶어서 쳐다보다가 줄을 서서 구입을 하려고 한다. 간접적으로나마 아저씨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서 또 기쁘다.


해삼/개불 해서 만원, 멍게 만원 2만 원의 행복이다.

아내와 둘이서 금방 맛있게 먹어 치웠다. 아이들은 아직 생선회도 해산물도 날 것으로 잘 먹지 못하는데 우리가 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큰 아이는 용감하게 멍게와 해삼까지 도전을 해서 성공했는데 작은 아이는 멍게를 먹어보더니 별 맛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감사하다. 



오늘은 내가 사는 곳이 사천이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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