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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31. 2022

기관사는 역에서 마츠모토를 부른다

생소한 도시의 밤거리 구경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 구경을 마치고 나서, 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 출발점으로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본 광경을 보면서 그대로 돌아가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었기에, 잘 모르고 있던 도시로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내가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것 같았던, 마츠모토라는 도시가 그곳이었다.




그래서 타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의 마지막에 있는 시나노 오마치 역에서, 노을을 보며 기차를 기다려 마츠모토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열차에 오르고 나니 완전한 밤이 되어 있었고,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비슷한 체육복을 입은 듯한 학생으로 반쯤 탄 열차는 재잘재잘 수다떠는 소리로 부산스러웠다. 큰 캐리어를 끄는데다 휴양지 모자까지 쓰고 있는 나는 누가 봐도 관광객인 듯한 모습으로, 캐리어를 옆에 둔 채로 조금씩 졸았던 기억이 난다.




노을이 내리던 시나노 오마치 역의 모습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지, 마츠모토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나는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과 함께 플랫폼에 내렸다. 열차의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나에게 서늘한 밤공기가 다가왔다. 그리고 귀에 들려오는 안내 방송. 마츠모토, 마츠모토. 아까까지 안내 방송을 하던 역무원이 똑같은 목소리로, 도시 이름인 마츠모토를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였다.




역 밖으로 나오니 완전한 밤이 되어 있어서, 버스를 타고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로 가기로 했다. 나 혼자뿐인 버스의 맨 뒤에서, 어둑한 밤거리의 가로등들을 구경하며 목적지에 도착해 내려 조금 걸어가니 게스트하우스가 보였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외형은 아니었지만, 근처에 있는 건물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니 앞쪽에 사람들이 머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 직원이 있었다. 운 좋게 있는 1층 침대에 체크인을 마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위해 다시 로비로 나왔다. 나는 보통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대부분의 정보를 물어보는 편인데, 이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근처에 밥 먹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였다. 이날 아침부터 저녁이 늦은 밤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나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스트하우스 관련 정보와 방문할 만한 명소, 음식점 정보가 두꺼운 메뉴판마냥 종이로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 특유의 아날로그 문화가 내가 익히 알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거리가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 한 이자카야가 밥을 먹기에 적당해 보였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이자카야에서 밥을 먹을 수 있냐는 내 말에, 직원은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밥 먹으러 가서 별 문제 없을 거라는 대답해 주었다. 일단 이자카야 쪽으로 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도에 표시해 두고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직접 그리고 쓴 것이 인상적이었던 게스트하우스 이용 안내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로비




옛날 느낌이 났지만, 주위와 잘 어울리던 마츠모토의 게스트하우스




매우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던 길 보았던 밤거리




좁은 골목길은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은 번화가는 아니었던것 같다. 늦은 밤 길에 사람은 별로 없었고, 불 들어온 가게들만 가로등 아래서 빛나고 있었다. 이런저런 가게들을 곁눈질하며 걸어가다 보니 작은 골목이 나왔다. 지도상으로 보면 그곳이 이자카야가 있는 곳이었는데, 왔다갔다 해도 어디가 입구이고 어디가 이자카야인지 알 수 없어서 몇 번이나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사진으로 봤던 것과 유사한 입구가 있어 들어갔다.




안쪽은 넓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은 주방에 바로 맞닿은 자리가 일렬로 있었고, 왼쪽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좌식 자리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는 사이, 나는 주방에 바로 맞닿은 자리에 앉았다. 어버버 하며 영어 메뉴 있냐고 물어보니, 다행히도 영어 메뉴를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빼곡하게 적힌 영어 메뉴가 있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튀김정식을 먹어 보기로 했다.




튀김정식을 기다리며 가게 안을 마저 둘러보았다. 앞쪽의 서늘한 유리 진열장 안에는 횟감용 생선이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차가운 유리병과 술이 들어차 있었다. 구석에 티비가 켜져 있었는데, 이때 일본과 중국이 경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중국이 이긴 모양이었는데, 뒤쪽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이 아 져버렸네,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까 괜찮아,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록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관광객이란 나밖에 없는듯한 분위기가 좋았다.



모르고 몇 번이나 지나쳤던 이자카야의 입구




자리에 앉아 바라본 모습




빼곡하고 상세히 적혀 있던 영어 메뉴판




서늘한 진열장 안의 해산물들




그렇게 기다리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 음식이 나왔다. 내가 튀김정식을 먹었을 때 한국에서 텐동이라는 것이 그렇게 크게 유명하지 않았던 때 같은데, 지금 한국의 텐동과 비교하면 구성이 비슷한 것이 많았다. 다른 점이라면 일본 가정식 반찬인 감자조림과 야채절임이 함께 나왔다는 것인데, 사실 나는 강한 냄새가 나는 것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에 일본식 야채절임이 먹기 편했다.




이날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굶어가면서 다니다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먹은, 처음이자 마지막 끼니는 내 속을 만족스럽게 채워주었다.



어쩌다 보니, 밤 10시가 되어 챙겨 먹었던 그날의 처음이자 마지막 끼니




식사를 마치고 나가서 보았던, 골목길 입구의 간판




늦은 끼니를 해결하고 밖으로 나와, 근처를 조금 구경했다. 사람은 별로 없는 한적한 밤거리였지만, 적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가게들을 구경했다. 그중에는 북카페 같아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여긴 나중에 한번 와 봐야겠다 싶었던 곳들이 많았다.


북카페 구경을 하고 나서 조금 걸어가니 마츠모토 성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구경을 좀 하고 사진을 찍으려니 성에 켜져 있던 불이 꺼졌다. 나중에 알아보니, 밤이 늦은 시간에는 성의 불을 끄는 모양이었다. 비록 불이 꺼져 어둑해졌지만, 나름 분위기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 괜찮았다.




마츠모토 성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천천히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밤거리의 사진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었는데, 특히 도시가 아니라 빛이 적은 교외 지역을 찍을 때 그랬다. 하지만 이날 돌아가면서 밤거리를 찍고 나서 나중에 사진을 보니,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진이 많았다.



나중에 다시 와 보고 싶었던, 북카페 같은 가게




구경을 하는 도중에 불이 꺼져 아쉬웠던, 마츠모토 성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던 편의점




돌아가며 찍은 사진을 나중에 다시 보니, 어설프게나마 별들이 찍혀 있었다




그렇게, 생소한 도시에서의 첫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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