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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준 Jul 31. 2022

그냥 잊고 살라고 할 것이다

악이 살아남는 이유

만약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상상도 해보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이지만, 지금도 이 세상에는 숨 쉬듯이 일어나고 있을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분명히 악의적인 행동에 의한 것도 있을 것이다. 결국엔 모든 것이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운이 없었다고 이야기 할 만한 것과, 명백한 악의적 가해 라고 할 만한 것은 다르다.




어느날 집에서 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는데 연락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잠에 들고 나서, 다음날 아침까지 가족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어떨까. 문자도 없고 전화도 없는 상황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며 연락을 반복하다 보면, 어쩌면 출근 해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쯤 연락을 받을지 모른다. 경찰일 수도 있고, 병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연락을 받아 가면, 어제까지만 당연히 집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족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은 모습으로 누워 있을 것이다.




그 뒤로는 인정해야만 하는 차가운 현실만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더이상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은, 아마 억세게 운이 없었던 것이 아닌, 누가 봐도 명백한 악의로 인해 가족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일 것이다. 술을 먹고 운전해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다가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지나가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기는 그렇게 행동해도 처벌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다양한 이유가 가족에게 닥쳐와 명백한 결과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을 잃어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게 될까.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인간관계의 상실이란 그 일부분을 강탈해가는 것이다. 억지로 쥐어 잡고 뜯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빈 공간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고통으로 남는다. 가족과 함께 하던 공간과 시간, 일상생활, 그 모든 것을 반복할 때마다 더이상 가족이 없다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가족을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복수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복수를 꿈꿀 수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가족을 잃은 이상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철저히 복수를 계획할 수 있다. 음주운전한 그 사람을, 폭행하고 도망간 그 사람을, 자신은 처벌받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행동한 그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간에 복수하려고 계획할 수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가 차갑게 식어버린다 해도, 그 감정을 상대에게 쏟아내고 상대가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기를 바라며, 그것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몇 년간 철저하게 준비해서 드디어 복수의 순간이 왔을 때, 주도면밀한 계획 끝에 드디어 그 순간이 눈앞에 온다고 하면, 과연 가족은 자신이 그러는 것을 진심으로 바랄까? 가족은 이미 세상을 떠나 버린 자신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 선을 넘기 일보 직전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 그만 두라고 할 것이다. 자신은 없었던 걸로 생각하고 남은 인생을 살라고 할 것이다. 어쩌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남은 삶이라도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테니.




그냥, 잊고 살라고 할 것이다.




분명히 더이상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긴 것은 상대방인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고통을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상대가 어떤 고통을 받는다 한들, 자신이 받은 고통과 비슷할 것 같지 않다. 결국 자신은 이미 최대의 고통을 받았고, 상대의 고통은 자신이 받은 것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벗어날 수 없는 모순이고, 악이 살아남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악이 상대방에게 항상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이 세상에 흔한 것은 악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통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보다 더한 출혈을 강요하는 악이 아니다.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상대방에게도 가하면 안 된다는, 대부분의 선함이다.




그리고 오늘부터 내일까지, 그 선함이 사람들의 일상을 만들어내고 이어간다.




손해볼 것 없는 악이 일상의 연속이 아닌 것은, 그 악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선함 때문이다. 2019/04, 서울 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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