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모토 게스트하우스 에서의 시간
나는 한때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여행 가면 꼭 게스트하우스만 가곤 했다. 다양한 게스트하우스를 구경하며 특징을 분석하는 것도 좋았고, 여행을 온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이야기 하기 쉬운 공간이라는 것도 좋았다. 일반적으로 숙박 장소로 선택하는 호텔에 비해서 숙박비를 많이 아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에 하나였지만, 단순히 비용 때문만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가 가지는 공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일본 북알프스 여행을 하면서도, 모든 숙소를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여행 중간에 들렀던 도시에서도 마츠모토에서도 거르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게스트하우스는 도심 안 번화가라기보다는, 약간 도심지를 벗어난 주택가 큰 길에 있었다. 다른 주택인 듯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 게스트하우스는 밤의 불을 밝히고 서 있었다. 정면에서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로비 역할을 하는 살롱이었다.
살롱은 주 출입구로 쓰이는 곳 안쪽에 있었는데, 가운데에 넓은 원형 탁자가 있고 그 주위에 둘러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살롱 구석에는 직원이 앉아 있는 곳이 있고, 그 옆에는 이런저런 안내책자가 가득했다. 직원은 살롱에 있는 탁자 앞에서 체크인을 도와주고 마츠모토 관련 정보를 알려주곤 했는데, 숙소 사용 안내를 그림으로 그려둔 것이 있었다. 짧은 순간 훑어본 그림이었지만 전문가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용공간도 안쪽에 하나 더 있어서 책을 읽거나 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유리병에 담긴 식수가 컵과 함께 비치되어 있었는데, 물을 마츠모토 안 곳곳에 있는 우물에서 떠다가 준비해 놓는다고 했었다. 크기가 작아도 필요한 것이 갖춰진 주방도 있어서,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해 먹을 수도 있었다. 여행을 가면 그곳의 식재료를 이용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문득 고기를 구워 먹어 보고 싶어서 대형마트에서 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기도 했다.
잠자리는 간단한 매트리스를 깔아 둔 방식이었는데, 안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잠 자는 것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번은 늦잠을 자서 꽤 늦게까지 매트리스 위에서 자다가 깨다를 반복했는데, 커튼을 쳐 둔 공간 밖으로 직원들이 정리를 하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아주 안락하고 편안한 잠자리는 아니었어도, 운 좋게 자리 잡은 1층 에서 내내 숙박할 수 있어 아주 좋았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사장의 주도로 지역 거주민들이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하여 손님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나는 운 좋게 숙박 하면서 그 행사에 참가할 수 있었고, 마츠모토와 그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이 방문하며 가져 온 음식을 조금씩 나눠 먹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온 사람 중에 한 명이 생일이어서 케이크도 나눠 먹었는데, 그때 먹었던 케이크와 누군가가 가져온 복숭아가 아주 맛있었다. 나도 뭔가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에, 장을 봐서 불고기 느낌의 고기 요리를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간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자리에서 게스트하우스 사장과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건물은 원래 일본식 된장인 미소 공장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운영에 신경쓰이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같은 업계 이야기도 다양하게 물어보았었다. 사장은 일러스트 일도 조금 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하는데, 다른 방식의 셰어하우스 같은 것도 하고 있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꽤 부러움으로 기억에 남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어느 네덜란드 사람도 기억에 남는데, 네덜란드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일본 여행을 왔다고 했다. 도시 동선이 비슷해서 다음 도시에서 만나기도 하고, 네덜란드 음식점 주방 이야기와 요리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양한 대화를 나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한국에 오기도 했는데, 한국에 와서도 몇 번 만나 서울의 인상적인 장소들을 소개시켜 주었었다. 시간이 꽤 지나면서 나눈 대화들이었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의 다양한 문화들에 대해 이야기 했던 지점들이 지금도 종종 기억난다.
짧게나마 게스트하우스 일을 하면서 설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많았다. 침대는 편안한지, 화장실은 어떠한지, 공용공간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좋은 설비 이외에도, 전반적인 공간을 어떻게 계획하고 어떤 분위기로 이끌어 나갈 것인가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 계획이 명확할 때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도 안락함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이 설비가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느낀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마츠모토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였다. 안락함을 주는 것은 단지 침대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