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라카와고 여행기
마츠모토를 떠나는 날, 아침 일찍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버스를 타러 갔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게스트하우스를 떠나 길을 가다 보니, 사방팔방에 높은 산맥이 보이는 마츠모토의 풍경이 조금 더 특별해 보였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전깃줄에 줄지어 앉아 있는 새들을 보았는데, 한국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제비가 많았다. 한국에서도 교외 지역으로 많이 나가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그 꽁지날개를 재미있어 하며 사진을 찍고 버스를 기다렸다.
마츠모토에서 출발하는 다음 목적지는 가나자와 였다. 그런데 행선지를 검색하던 중, 가나자와로 가는 길에 잠깐 다른 곳을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간에 다카야마에서 내려서 다른 곳으로 가 구경을 하고 돌아온 뒤에, 다시 가나자와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가나자와에 도착해서 다른 것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천천히 이것저것 구경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간에 가 볼 만한 곳을 찾게 되었다. 그 중에 가 보기로 결정한 곳이, 시라카와고 였다.
일전에 일본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다가, 주위 산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논이 펼쳐져 있고 그곳에 풀로 엮은 듯한 두꺼운 지붕이 올라가 있는 풍경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광경이 꽤 신기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내가 본 시라카와고의 모습이 그것과 아주 비슷했다. 옛날에 가 보고 싶었던 장소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만약 중간에 다카야마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가방을 보관할 수 없다면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은 매우 고된 일정이 될 것이 뻔했다. 그래도 가방 보관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내렸던 다카야마 버스 정류장에는, 다행히 가방 보관함이 있었다. 시라카와고에도 도착하고 나서 보니 가방 보관함이 있어서, 누구라도 짐을 편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여하튼, 마츠모토에서 출발한 버스는 거친 산맥 쪽으로 나아가더니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맥 사이 도로와 계곡을 지나갔다. 중간에 멋진 휴양지 같아 보이는 곳에서도 멈춰서, 나중에 다시 와 본다면 들러 보고 싶은 곳들도 지나갔다. 다카야마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가방을 보관하고 시라카와고로 가는 버스에 오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시라카와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다카야마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있었고 그동안 시라카와고를 돌아보기로 했다. 날씨가 매우 덥고 볕이 강했지만, 후회 없는 구경을 위해서는 열심히 걸어다니며 구경을 해야 했다. 시라카와고를 관통하는 가운데 대로 주위로 논과 밭, 옛날식 건물들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었는데, 일단 대로를 쭉 걸어가며 둘러보기로 했다.
시라카와고는 산맥 사이에 있는 작은 평지에 자리잡은 듯 했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산이 보였다.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한 옛날 방식의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좀 더 현대적인 모습의 건물도 볼 수 있었다. 기념품이나 음식을 파는 가게들을 둘러보며 쭉 뻗은 대로를 걸어가는데, 최대한 건물에 붙어다니면서 조금이라도 그늘 아래로 걸어다녔다.
시라카와고 한 가운데에 있는 대로를 따라 쭉 걸어가며 구경하다 보니, 대로 끝에서 작은 신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사는 작은 숲 속에 있는데다가 신선한 물이 나오고 있어서 손을 씻고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석조 구조물과 물 떨어지는 샘 같은 것들이 꽤 인상적이었는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도 서늘한 그늘 안에서 얼굴을 씻고 땀을 식히면서 사진을 찍었다.
신사에서 조금 더위를 식히고 나오니, 앞쪽으로 도로가 이어졌다. 걸어왔던 곳 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주위로 논들이 펼쳐진 모습이 오히려 더 한적하고 평화로워서 조금 구경해 보았다. 시라카와고는 정말 산맥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아서, 가까운 산 너머로 더 높은 산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통 건물은 꽤 다양한 크기가 있었는데, 대로 마지막까지 가서 봤던 것 중에는 다른 건물을 몇 개는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한 것도 있었다. 그 안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가까이 가 봤었는데, 안쪽에 뭐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보니 시라카와고 옆쪽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과 함께 그 위를 지나가는 다리가 있어서, 다리 위로 걸어가 건너편까지 간 뒤 돌아왔다. 다리 근처에는 주차장이 있는지 차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땡볕을 받은 차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시 대로 쪽으로 향하여 구경하는데, 방금 전에는 큰 길 위주로 구경했으니 이번에는 큰 길에서 떨어진 길들을 구경하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큰 길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길을 걸어 보았다. 사실 대부분의 길이 담벼락 없이 트여 있어서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다른 시점에서 본 길은 좀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보여줄 것 같았다.
대로와 다른 점은 길의 넓이와 사람의 수 정도였지만, 비록 특유의 건물과 논들이 주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해도 너비가 좁은 길에서 보는 풍경은 조금 달랐다. 길 가다가 재미있는 가게들도 볼 수 있었는데, 통나무를 파서 물통을 만들어 두고 그곳에 물이 흐르게 한 다음, 그 안에 음료수를 한가득 담아 두고 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원한 느낌도 전달하고 시라카와고 분위기에 아주 잘 맞는 것 같아서 깊은 인상에 남았다.
길 옆을 따라서 흘러가는 배수로 같은 것들도 볼 수 있었는데, 이 배수로에 팔뚝만한 물고기를 키우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일전에 있었던 마츠모토에서 작은 물고기가 배수로를 헤엄치는 것은 볼 수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시라카와고 배수로에 있던 물고기는 누군가가 키우는 것 아닐까 싶었다.
원래는 뭔가 사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지나가다가 문득 본 아이스크림이 사 먹고 싶어져서 녹차와 바닐라가 반반 섞인 소프트콘을 사먹었다. 날씨가 더웠던 탓에 사서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녹고 있었지만 더운 날 시라카와고 구경을 하고 나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자제력이 사라진 것일까, 그곳에서 팔고 있었던 것 같은 소고기 꼬치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때는 여행 하면서 경비를 아낀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시라카와고에서 돈 안 쓸 생각이었지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나니 어차피 써버린 돈 다른 먹고 싶은 것도 사먹는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꽤 비싼 가격의 소고기 꼬치도 하나 사먹었다. 마블링 잘 되어 있는 고기에 소금 후추로 간을 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이스크림과 꼬치까지 먹고 나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다카야마로 돌아갈까 했는데,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상태에서 가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시라카와고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였는데, 약간 높은 곳에 있었기에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날씨는 매우 덥고 볕이 강했기에,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그 전망대를 가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약간 힘들어도 꼭 가서 후회없는 여정을 마치는게 중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 전망대로 가기 시작했다.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다 보니 옆쪽으로 작은 버스가 지나갔는데, 위아래를 반복하는 버스도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타면 편했겠지만, 다행히 올라가는 비탈길이 대부분은 나무에 가려 있어서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위쪽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전망대에 도착해 보니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맨 처음 시라카와고에 대해 모르고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봤을 때 보았던 그 느낌을, 전망대에서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산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에 자리잡은 논과 옛날식 건물들, 그 중간으로 이어지는 굵은 도로. 내가 인터넷에서 기억하던 그 모습과 똑같았다.
햇볕에 바싹 구워지며 땀을 뻘뻘 흘리고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것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금방 도착할 수 있었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꽤나 절경이었다.
전망대 구경까지 마치고 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니, 운 좋게 정류장 옆 건물 안에서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문득 버스정류장 안 겨울의 시라카와고 사진을 보니, 나중에 눈이 많이 내린 시라카와고의 모습도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