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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베이킹은 힘들다

하지만 힘들어도 괜찮은 이유

by 문현준

올해 들어서 홈베이킹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것저것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 줄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홈베이킹을 한다고 이야기 할 때도 있다. 홈베이킹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만들고 싶은 빵과 과자를 자신의 취향대로 마음껏 만들어 먹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자신의 취향과 먹고 싶은 것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물을 만들고 그것을 주위에 선물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취미인가?




하지만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고 편하기만 한 것도 없다. 홈베이킹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취미로 하는 요리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홈베이킹은 좀 더 특별히 쉽지 않다. 힘들다.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장비의 문제이다. 홈베이킹을 하려면 일단은 오븐이 필요한데, 아직 한국에서 오븐은 평범한 주방가전이 아닌데다가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오븐은 홈베이킹이 아니라 오븐요리용에 가까운 느낌이다. 가령 내가 홈베이킹 할 때 쓰는 오븐은, 오븐팬에 기름받이가 있어서 평평하게 작업물을 올릴 수가 없다. 게다가, 오븐 안의 열 순환이 어떻게 된 것인지 레시피를 지켜도 결과물이 다르게 나올 때가 많다.





오븐을 구했다 해도, 홈베이킹을 하려면 레시피에 맞고 오븐에 사용이 가능한 틀을 사야 한다. 레시피에 맞지 않는 틀은 사용할 수 없고, 오븐에 맞지 않는 틀을 쓰려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령 쿠키 틀로 카스테라는 못 굽고, 카스테라 틀이 오븐 안에서 붕 뜬다면 어떻게든 고정할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게다가 레시피가 바뀌면 틀도 달라져야 할 수 있다. 후라이팬 하나로 구이와 찜과 국물요리 등이 가능한 일반적인 요리에 비교한다면 도구 비용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홈베이킹에 들어가는 재료도 보통은 대용량으로 팔기에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분유, 코코아 가루, 초콜릿, 다양한 종류의 밀가루 같은 것들을 조금씩 쓰다 보면 냉장고는 꽉 차버린다. 게다가 베이킹 재료들은 쉽게 냄새를 흡수하는 경우가 많아, 냄새가 강한 음식과 함께 보관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설겆이도 쉽지 않다. 버터나 계란, 밀가루 반죽 같은 것을 닦아내는 것은 일반적인 설겆이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이다. 특히 가장 신경쓰이는 요주의 설겆이는 글루텐이다.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이 활성화 되고 나면 끈적이는 껌처럼 변하는데, 뜨거운 상태에서는 녹아서 여기저기 고무처럼 달라붙어 수세미를 버리게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거름망을 막기도 한다.




사실 이런 것들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홈베이킹의 어려움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요새 주위에서 맛있는 빵을 너무 쉽게 사먹을 수 있게 된 탓에, 집에서 홈베이킹을 큰맘 먹고 시도하다가 도리어 결과물을 보고 실망해 버리기 쉬워진 것이다. 직접 베이킹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준비하고 비용을 써 가면서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은 탓에 차라리 사 먹는게 낫겠다 하며 실망하는 것이다. 원래 취미로 요리하는 것이 그렇겠지만, 들어가는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 비해 만든 것은 사먹는 것보다 별로인 경우가 많고 홈베이킹은 그게 더 심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올해 계속 꾸준히 홈베이킹을 하고 있다. 거의 안 쓴 틀은 선반에서 먼지를 맞아가고, 냉장고 안에는 베이킹 재료 봉투가 한가득에,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볼 때마다 뭔가 조금씩 맘에 안들어서 아쉽기만 하다. 확실히 그런 것을 생각하면 홈베이킹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홈베이킹을 좋아하는 것은, 소소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며 나누기 가장 좋아서인것 같다. 집에 초대해야만 같이 먹을 수 있는 다른 요리들과는 다르게, 내가 집에서 준비해 편하게 들고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 반응을 볼 수 있으니까.



결국 홈베이킹도 요리처럼 준비하기 힘들지만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고, 다만 좀 더 힘들고 좀 더 쉽게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든 것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홈베이킹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어도, 결과물을 나누고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홈베이킹의 장점 아닐까. 2019 09, 서울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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