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불로소득의 꿈
내가 대학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때는 주식이란 돈에 환장한 사람들의 도박 정도로 여겨졌다. 돈을 반드시 절박하게 모아야만 한다는 이유가 없던 시절, 주식을 사면 돈이 된다는 말에 흥미를 느꼈던 주식 계좌를 개설하여 어플을 깔고 생에 첫 주식 매매를 해 봤었다. 지금도 유명한 반도체 회사 주식을 샀었는데, 갑자기 가격이 오르면서 수익률이 두자릿대를 돌파했을 무렵 부모님께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당황하여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두 자릿수를 넘었던 수익률이 점점 내려가서 마이너스 두 자릿수가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는 팔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제 주식은 더이상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이 아니다. 주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는 어떻게든 푼돈한번 벌어보려고 갖은 고민을 다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티비에서는 유명한 사람들이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면서 자랑한다. 티끌 모아서 티끌이겠지만 그 티끌로 뭐라도 해야만 하기에 사람들은 평일 아침 9시가 되면 화장실로 사라지곤 한다.
그런데 왜 주식을 하면 내가 사면 떨어지고 내가 팔면 오르는 것 같을까? 아마 사람은 부정적인 기억을 오래 남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산 주식이 오르는 것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지겠지만, 내가 산 주식이 떨어지거나 내가 판 주식이 올라가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부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 강렬히 남고 곱씹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손해를 보는 선택을 하고 나면,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어떻게든 과거의 자신에게서 선택의 비합리성을 찾고 그 선택을 반복하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추론과 분석은 의미가 없는 행위이다. 대응할 수 없었던 미래의 정보를 가지고 과거에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번 주 로또 추첨 방송을 보고 그 번호를 뽑았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주식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돈이 실시간으로 가치가 변하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아닐까. 이것이 도박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싶기도 하다. 주사위를 던져서 어떤 수가 나올 지 맞추려 하는 것과, 주식을 사서 그것이 오를지 내릴지 맞추려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찬 환경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도박이나 주식이나 어느정도 공유하는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법 일 것이다. 매번 자신이 내리는 판단이, 최대한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내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주식의 본질이지만, 자신의 돈이 초 단위로 가치가 변하는 상황에서 그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스스로 불지옥으로 걸어들어가서 자신의 돈을 신년 운세나 다름없는 미래 예측에 올인하고 있는걸까? 차라리 도박은 주사위가 떨어지는 순간 좋고 나쁨으로 결론이 나겠지만, 주식은 매 분 매 초 자산의 가치가 변하는데다가 언제 그 변동된 가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돈 벌어서 백화점 가는 상상과 돈 잃어서 한강 가는 상상을 분 단위로 반복하게 되는데, 왜 사람들은 손수 그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면서까지 주식을 하는 걸까?
보통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노동하여 얻는 대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노동에 대한 대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제까지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보장도 없으며, 돈을 얻기 위한 노동 그 자체는 보통 사람들에게 고통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하기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은 노동만이 아니다. 돈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불로소득이다.
모두가 마지못해 염원하는 불로소득은 얼마나 꿈 같은 이야기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 더이상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불로소득이란 도저히 자신이 시작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건물을 자기 돈으로 사고 땅을 저축해서 살 수는 없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자극적인 말로 유혹하는 것에 이끌리다가는, 돈을 벌기는 커녕 누군가의 돈 벌기를 도와줄 판이다. 하지만 주식은 어떨까? 당연히 주식 정도는 살 수 있다. 비록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해도.
결국 끝없는 근로소득의 노예로 살다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그 시작이다. 돈이 돈을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주식뿐인 것이다. 운이 좋을지 아니면 억세게 나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미래는 영영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수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가린 상태에서 지폐를 휘둘러 대며 싸우는 콜로세움에 자발적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