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 호수 구경
일전에 인상깊게 보았던 일본 만화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했던 적이 있었다. 작중에 등장하는 큰 민물 호수를 보고 나서 실제 저런 곳이 있을까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감독이 실제로 참고했던 호수는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있는 마츠바라 호수 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실제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은 나가노에 있는 스와 호수 라는 것이었다. 구글 지도로 보니 실제로 더 큰 호수라서, 직접 가서 본다면 멋진 경치가 될 것 같아 기억을 해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마츠모토에 가게 되었을 때, 근처에 무엇이 있나 하고 돌아보다가 스와 호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에 가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 마츠모토에 있으면서 날씨가 좋을 때를 하루 골라 스와 호수에 가 보기로 했다. 날씨가 좋은 날 오전에 마츠모토 성을 구경하고 점심을 먹으니, 해가 질 때 즈음 해서 스와 호수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마츠모토 역에서 출발해 카미스와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와 역 근처에 있는 몇 개의 역 중 카미스와에 내리고 조금 걸어가니, 앞쪽에 거대하게 펼쳐진 호수가 보였다. 날씨가 쉽게 바뀌면서 짙은 구름이 몰려왔다 사라지길 반복했지만, 스와 호수 구경을 할 때가 되니 파란 하늘과 짙은 구름이 함께 있어 구경하기 좋았다.
거대한 호수에 가까이 가니 생각보다 짙은 민물 비린내가 몰려왔다. 호수에 녹조류가 둥둥 떠서 암초처럼 보이는 것이, 가까이 가면 날벌레가 들끓을 것 같아 가까이 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닐 듯 했다. 호수 근처의 산책로를 따라 구경하면서 조금 걸어갔는데, 호수 근처에 간헐천이 있다고 해서 구경한 다음 호수가 잘 보이는 공원으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호수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간헐천이 나온다. 간헐천 앞에는 분출 시간이 적혀 있는데, 운 좋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간헐천 안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간헐천 분출이 이렇게 규칙적으로, 정해진 수압으로 나올 수 있을까? 어쩌면 간헐천이 아니라 간헐천 모양의 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소박한 행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카메라를 꺼내드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짧은 분출을 보고 나서, 스와 호수가 잘 보이는 타테이시 공원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타테이시 공원은 언덕 위에 있어서 가기 위해선 좀 걸어가야 했다.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사고 나서 출발할 생각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니, 호수 변두리에 정박해 있는 오리배 정거장이 보인다. 그 모습이 묘하게 어릴 적 보던 것과 비슷해 향수를 자극했다. 스와 호수 근처로는 멀리 있는 산맥들도 보이는데, 짙은 구름이 걷히면서 나오는 빛이 산맥에 쬐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아주 먼 곳에 있는 산맥임에도 그 높이가 엄청나 보였다.
타테이시 공원은 스와 호수를 전망하기에 좋지만, 조금 높은 곳에 있어 도착하기 위해선 언덕길을 올라가야 했다. 자동차 도로가 구비구비 올라가는 곳에 보행로가 나 있는데, 비탈길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면 스와 호수 전망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올라가는 도중에 학생 두 명이 자전거를 이끌고 도로를 거꾸로 올라가 호수 전망을 구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가 저물기 위해 점점 산 너머로 내려가고 있어서, 공원에서 노을 전망을 보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편하다고는 할 수 없어서, 인도가 딱히 없는 찻길을 지나기도 하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나 놀이터 공터 옆 길, 계단을 지나기도 했다. 혼자서 맘 편하게 다니는 여행이었기에 망정이지, 여러 명이서 다니거나 한다면 택시를 타고 올라가는게 차라리 속이 편했을 것 같다. 공원에 가기 전 인터넷 후기를 보니 도보로 공원을 가면 가는 길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으스스 하다는 말도 있었다. 내가 공원에 올라갈 때는 아직까진 낮이었기에 괜찮았지만, 텅 빈 공터나 건물 사이를 지나다 보니 밤에 오면 꽤 무서울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어쩐지 끝까지 다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면 멋진 풍경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공원에 도착할 때가지 호수 쪽은 쳐다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길이 구비구비 굽어 가는 경우가 많아 중간중간 호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짙은 구름 사이로 볕이 확 들 때, 호수가 그 볕을 받아 더욱 빛났다.
그렇게 열심히 올라가다 보니, 주차장과 함께 있는 타테이시 공원이 나왔다. 몇 가지 조형물과 잔디밭이 있는 타테이시 공원 앞쪽으로는 스와 호수의 모습이 한 번에 드러난다.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 혹은 구경을 온 관광객들로 앞쪽이 북적거리는 사이, 나는 뒤쪽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공원과 호수를 구경했다.
스와 호수의 규모는 엄청나게 컸다. 내가 사진 찍을 때 사용하는 카메라로는 호수의 크기만 온전히 담는 것이 고작이었다. 스와 호수의 양 끝에는 나름 큰 규모의 도심지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도심지에 불이 들어오고 반짝이는 것도 예뻤다. 도심지와 호수를 한 번에 찍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찍을 수가 없어서, 아쉬워 하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니, 도시는 알록달록한 네온사인과 주황색의 가로등빛으로 밝혀졌다. 하늘은 아직 파랬지만 산과 도시에는 먼저 어둠이 찾아와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밤이 된 후의 야경까지 보면 좋겠다 생각하며 호수 구경을 하고 있는데, 분명히 낮 까지는 별로 없었던 모기들이 어디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호수 구경을 하다가도 매 분 마다 몇 번씩 모기의 소음이 귓가에 울려 신경질적으로 손을 흔들어 댔었다.
해 지기 직전의 밝은 하늘과 노을로 물드는 주황빛 구름들, 완전히 해가 지고 난 후 짙어지는 하늘까지 차례로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나는 손을 선풍기마냥 계속해서 흔들며 모기를 쫒았다. 종종 작은 불빛을 단 배들이 호수를 떠다니는 것을 구경하면서, 더 구경하고 내려갔다간 정말 어두워지겠다는 생각에 왔던 길을 그대로 거꾸로 짚어가며 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 올라오면서 어두울때 오면 으스스 하겠다 생각했던 길을, 으스스 할 때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터와 골목길을 걷는데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신경이 예민해지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려가는 길에는 사진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의 사진만 찍고 엄청나게 빨리 걸어 내려왔었다. 내려오는 도중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축제 음악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스와 호수 구경을 위해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축제 포스터를 봤는데, 아마 그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축제까지 본다면 좋겠지만, 마츠모토로 돌아가야 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마츠모토로 돌아와서 숙소까지 걸어가며 근처를 구경하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 보니 비어 가든 같은 것이 열려있는 듯 했다. 한국으로 치자면 아마 을지로 골목 같은 분위기 아니었을까 싶은 그곳은, 맥주 회사의 천막이 크게 들어와 있고 사람들은 음식과 맥주를 사 먹고 있었다. 작은 콘서트 같은 것도 열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꽤 몰려 있는데도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 노래를 부르는 사람, 그것에 따라 막춤을 추는 사람들이 뒤섞인 공간. 그게 새삼스럽게 신기해서, 잠시동안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중간에 마츠모토 성도 구경했는데, 불이 환하게 들어 왔을 때 사진을 찍으니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이날이 마츠모토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기에, 새로운 곳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지만 결국엔 돌고 돌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첫날 밥을 먹었던 곳에 다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회정식을 먹었는데, 그야말로 정식에 회만 조금 올라간 것 같은 단촐한 구성이었지만 맛있었다. 마지막 식사라는 생각에, 회정식을 먹고 나서 닭튀김까지 먹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동네 집밥같은 그 분위기가 좋아, 다시 마츠모토에 간다면 또 가보고 싶다.
그날 음식점에는 내가 첫날 그곳에 갔을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관광객이라는 것을 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었다. 더듬더듬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은 눈이 달라서 알아볼 수 있다고 일본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쩌다 보니 정말 짧은 일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게 사장님의 아들인 듯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티켓 같은 것을 주었다. 마츠모토 안의 다른 가게에 반납하고 작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다음날 가나자와로 가니까 괜찮다고 했었다.
그날은 두 번째 간 음식점에서 이미 알고 있는 맛의 음식을 먹었다. 나는 항상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 봤던 음식점과 맛을 아는 메뉴의 요리여도 그날의 저녁이 나는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