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고장나고 나면
나는 휴대폰을 바꾸고 나면 굉장히 오래 쓰는 편이다. 보통 바꾸고 나면 2 년 정도 기기 비용을 할부로 내면서 통신비를 지출하는데, 나는 못해도 교체 후 4년을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아이폰을 쓰면서 지금까지 대략 4년을 간격으로 모델을 바꿨다. 그리고 그동안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런데 지난번, 3년 정도 사용한 아이폰이 갑자기 재부팅을 반복하면서 그 특유의 사과 모양을 띄우는 것이었다. 아직 1년 정도는 더 써야겠다 싶었기에 최대한 더 써 보려 했지만, 재부팅이 계속 되는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연결한 선이 인식되지 않아 충전도 할 수 없고, 재부팅이 자주 반복되서 그 어떤 작업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가장 가까운 주말, 처음으로 애플하우스에 가서 진단을 하고 수리를 했다.
다행히 무선 충전은 되는 상황이었기에 중요한 사진이나 다른 것들을 먼저 옮겨두는 2일의 시간동안, 휴대폰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사실상 휴대폰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휴대폰을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휴대폰이 고장나 보니 아무리 안 쓰는 사람이라 해도 현대사회에서 휴대폰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핸드폰을 쓸 수 없으니 길을 찾거나 뉴스를 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찾을 수 없다는 불편함은, 다른 문제점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에 가까운 수준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인터넷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인터넷 안에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인터넷 안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 자신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은 핸드폰을 많이 이용한다. 핸드폰이 고장 났다는 것은,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은행에 가서 기다리면서 처리해야할 업무를, 은행 어플을 통해 편리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증권사에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통화로 정리해야 하는 일도, 증권사 어플로 할 수 있다. 이 또한 할 수 없다. 정부 기관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거나 서류를 발급받는 일도 직접 관련 부서를 방문할 필요 없이 할 수 있다. 당연히 할 수 없다. 핸드폰이 고장난 순간, 핸드폰을 통해 증명해 오던 인터넷 안의 내 신분은 사라져 버리고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핸드폰이 고장난다는 것은 단순히 인터넷을 통한 신분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것 이외의 문제도 있다. 핸드폰은 단순히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에만 쓰이지 않고, 자신을 기록하는데에도 쓰인다. 핸드폰을 통해 나누는 수많은 대화들, 찍은 사진, 검색 기록들.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유출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소중한 정보이기도 하다. 만약 갑자기 휴대폰이 고장나서 그곳에 담긴 자료를 복구할 수 없다면, 자신의 기록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장난 핸드폰을 붙들고 어떻게든 자료를 복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핸드폰 그 이상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되고 굳이 현실 세계에서의 번거로운 절차 없이 대부분의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일상 대부분을 핸드폰을 통해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현실 생활의 내가 있다면,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 안에서의 나를 의미하는 것은 현실 생활의 내가 아니라 내가 들고 있는 핸드폰인 셈이다. 인터넷 안에서 사람을 증명하고, 사람의 행동이 남기는 흔적을 수집하는 휴대폰이 사람 그 자체인 것 아닐까.
앞으로는 꼭 꼭 주기적으로 자료 복구를 해 둬야겠다 하는 생각이 입 속의 쓴 맛으로 남아 사라져 갈 때 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