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영국식 펍
마츠모토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일정 전 마츠모토 성을 가기로 했다. 다행히 어제 생각한 대로 아침보다 날씨가 훨씬 좋아서, 전망대에 올라가면 좋은 전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 의도치 않게 소바를 먹었기에, 그렇다면 마츠모토에서 먹어볼 만한 다른 곳의 소바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추천받아 한 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가게 주인이 휴가를 가는 바람에 먹지 못해 아쉬웠다.
늦은 아침은 점심으로 해결하기로 하며 마츠모토 성으로 가니, 어제보다 좋은 날 때문인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전망대에 가기 위해 성에 들어가려 했는데, 표를 끊는데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알고 보니, 마츠모토 성은 내부 보강 공사를 하고 있기에 동시간 대 입장인원이 제한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늘 아래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두고, 나오는 만큼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있는 듯 했다.
처음에는 내 앞에 사람들이 꽤 많이 앉아 있어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보통 줄을 선다고 생각하면 오래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회전이 빨라서 금방 안에 들어갔다.
성 안에는 이런저런 일본식 갑옷이나 무기들을 모아둔 박물관 비슷한 것이 있지만, 나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가장 높은 곳의 전망대였다. 엘레베이터 같은 것이 없었기에 걸어서 올라가야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높은 탑들에 비하면 힘들지 않은 수준이었다. 성 위쪽까지 올라가니, 마츠모토와 주위 산맥이 눈앞에 보였다. 어제보다 좋은 날씨였지만, 아직도 먼 곳에는 비구름이 있는지 산맥 위쪽에는 짙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성의 전망대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마츠모토를 둘러싸고 있는 산맥들이 한결 더 선명히 보였다. 주위의 국립공원을 방문하기 위해 성수기에 많은 사람들이 마츠모토에 온다고 했었는데, 산들을 보니 대자연을 느끼기에 좋은 곳 같았다.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면서 카메라를 보다가, 문득 미니어처 모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카메라를 오래 전에 샀고 또 오래 썼지만, 미니어처 모드가 있는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미니어처 모드의 사진이 예뻐서 핸드폰으로 찍어 보고 돈 내고 어플도 사 보고 했지만, 결과물이 마음에 차지 않아 그만뒀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우연히 발견한 카메라의 미니어처 모드를 이용해 사진을 찍었더니,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전망대 위에서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높은 곳에서 아래의 작은 구조물들을 바라보는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미니어처 사진을 찍다 보니, 전망대에서 먼 곳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성 주위 정원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일본 전통 복장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 가족 단위 관광객들, 인력거들. 미니어처 사진을 찍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다시 못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지 않을까.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니, 성 주위 연못에 있는 백조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성을 몇 번 왔다갔다 할 때 항상 백조가 있었다. 마츠모토 성에서 살고 있는 백조였던 것 같다.
마츠모토 성 구경을 마치고 나서, 다음 일정 전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전날 길 가다가 봤던 가게가 떠올랐다. 지나가다가 봤던 그 가게는 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아서 사진까지 찍게 만들었었다. 마츠모토를 떠나기 전 꼭 한번 들러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점심은 이곳을 가기로 했다. 성에서 조금 걸어가며 있는, Old Rock 이라는 곳이었다.
가게는 대로변에 있었는데, 주위 가게와 겉보기에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목조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돋보이는 디자인의 간판과 빼곡하게 영어로 적인 설명들. 무엇보다, 생생한 화초가 담긴 화분이 앞에도 있었고 입구 위쪽에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몇 번 런던에 갔을 때 내가 알고 있던 펍이 떠올랐다. 런던에 있을 때 현지 게스트하우스 직원의 추천을 받아 간 펍은 내 취향에 완전 맞았기에 그 뒤로 몇 번 런던을 갈 때마다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방문했다. 마츠모토의 그 가게는, 내가 런던에서 갔던 그 펍을 그대로 빼다 박은 듯 비슷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모습도 내가 기억하는 그것과 똑같았다. 내부 디자인이나 소품 같은 것들이, 사장님의 내공이 절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물어보니, 사장이 마츠모토 로컬 양조장의 원년멤버 중 하나라고 했다. 유명한 맥주 상도 받았다고 하니,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잘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었다.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안쪽의 다른 공간도 볼 수 있는지 물어보니 흔쾌히 봐도 된다고 해서 안쪽의 따로 있는 공간까지 보며 사진을 찍었다. 이때 런던에서 봤던 펍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나는 나중에 그런 것을 한번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분위기 있는 사진을 찍어서 남겨두고 싶었다.
안쪽의 공간을 구경하고 화장실도 언뜻 보니, 화장실까지 잘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이정도면 사장님이 이를 갈며 만들었겠구나 싶었다. 소품과 디자인의 디테일을 보며 끝없이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는 메뉴도 피시앤칩스, 셰퍼드파이 같은 상징적인 음식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먹은 것은 마츠모토식 닭튀김이었다. 직원의 추천으로 주문한 것이었는데, 그와 함께 마츠모토 맥주도 마셔 보았다. 분위기에 완전히 취해 버린 나는 아마 물을 마셔도 맥주 맛으로 느꼈을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장소들. 종종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언젠간 다시 마츠모토에 가서 꼭 다시 가고픈 그런 장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