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나라이주쿠 탐방
마츠모토 시 구경을 조금 하고 나서, 가 보려 했던 곳으로 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분명히 아침에는 그럭저럭 맑은 편으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날씨가, 불과 몇시간 만에 구름이 잔뜩 몰려와 흐려져 있었다. 비록 날이 흐리긴 하지만, 그래도 가 보기로 한 곳에는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목적지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마츠모토를 출발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산맥들 사이로 밭이 펼쳐진 전원 풍경을 보다가, 창가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비가 올 수도 있겠다 싶지만 다행히 우산을 들고 온 상태였다. 기차는 주위로 밭이 펼쳐진 곳을 달리다가, 산 사이의 좁은 곳을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금 가니, 목적지 나라이주쿠에 도착했다.
나라이주쿠는 옛날 험난한 산맥을 넘어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먹고 쉬며 필요한 물자 보급도 하던 곳으로, 자연스럽게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이 발달한 곳이라 한다. 계곡 사이 좁은 골목길에 낮은 목조건물들이 죽 늘어선 곳이 운치가 있을 것 같은데다가 비 오거나 날씨가 흐려도 구경하기 괜찮을 것 같아 한번 가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나라이주쿠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앞쪽 골목으로 나가려고 보니, 비가 정말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나머지 걸어다니다간 물에 홀딱 젖을 듯하여 잠시 역에서 비가 잦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역에는 어떤 할머니가 열차표를 팔고 있었는데, 나는 일본어를 못하고 상대는 영어를 못하니 손짓발짓을 해 가며 돌아갈 시간대의 표를 미리 끊어두었다.
좀 있으면 비가 좀 잦아들까 하면서 기다렸지만,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간 골목 구경을 못 하는건 아닌가 싶어서, 조금 기다린 끝에 그냥 골목 구경을 하러 나섰다. 비가 오는 날씨 탓인지 나라이주쿠 거리에 사람은 많지 않아서, 군데군데 우산 쓴 관광객만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나라이주쿠는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옛날 느낌의 건물들이 양쪽으로 죽 늘어선 모습을 하고 있는데, 건물들이 기껏해야 2층 정도이고 대부분의 높낮이가 비슷하다. 중간중간 이런저런 것들을 파는 가게도 있고, 음식점이나 간단한 매점들도 있다. 아마 비가 와서 그런지 문을 열고 있는 가게는 많지 않았는데, 중간중간 문을 열고 있는 가게를 보며 천천히 골목길을 거닐었다.
나중에 돌아오고 나서야 인터넷에서 본 것이지만, 잠깐 인스타에서 비오는 날 분위기가 좋은 교토 사진이라면서 올라온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평탄하고 좁으며 쭉 뻗은 골목 양 쪽으로 낮은 목조건물이 이어지는 것이, 내가 봤던 나라이주쿠와 완전히 똑같았기에 교토가 아니라 다른 곳이 아닌가 싶었다. 만약 그 사진을 보고 교토에 갔다면 그런 광경은 볼 수 없지 않을까.
사실 교토에 간 것이 고등학교때 이후로 없었기에, 워낙 유명한 관광명소의 느낌만 기억날 뿐 딱히 이렇다 할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행을 기록하고 생각하고 나서 간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 가면 또 새로운 느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록 비도 오고 내가 생각한 그런 전형적인 관광명소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호젓하게 구경하는 한적한 나라이주쿠의 모습도 나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긴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가끔 앞쪽으로 계속해서 늘어선 목조 건물이 몇 겹 씩이나 겹쳐 보이는 순간이 있었는데, 이 순간들의 풍경들이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골목길 끝 산 위로 안개처럼 흔적을 남긴 비구름의 모습도 좋았다. 나라이주쿠 길은 그다지 길지 않아서 천천히 구경하며 걸어도 순식간에 끝까지 갈 수 있었는데, 비 오는 나라이주쿠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여기서 뭔가를 먹어 볼까 하는 생각으로 골목길을 돌아다녔지만 성격이 소심한 편이라 어디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가다 보니, 철길이 나왔다. 나라이주쿠 길의 마지막인 듯 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가는 일만 남은 상황에, 이번엔 진짜 뭔가를 먹어야겠다 싶었다. 지나가면서 보니 갈색 양념에 묻혀서 파는 경단류가 많았다. 한국의 떡꼬치와 비슷한 것들이었는데, 매콤달콤한 양념을 이용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간장과 된장을 이용한 듯한 양념이 있었다.
갈색 경단 하나,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 경단 하나를 사서 먹었다. 그냥 갈색 경단은 내가 생각한 떡꼬치의 맛이었는데, 옅은 간장의 맛이 말랑한 가래떡을 간장에 찍어먹는 그런 맛이었다. 짙은 갈색의 경단은 떡인 줄 알았던 내 생각과 많이 달랐는데, 떡이라기 보다는 밥을 짓이겨서 뭉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양념은 나쁘지 않았지만 밥도 아니고 떡도 아닌 것이 내 취향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비 오는 나라이주쿠 거리를 보며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먹으니, 그마저도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역으로 돌아와서, 또다시 손짓발짓을 하면서 좀 더 빨리 마츠모토로 돌아가는 표로 교환했다. 마츠모토에 돌아오고 나서 천천히 걸어 게스트하우스 쪽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나라이주쿠 구경을 하기 전 봤던 여러 가게들 중 한 곳이 떠올랐다. 고구마로 만든 다양한 것들을 파는 가게였다. 그중에 고구마 아이스크림이 갑자기 먹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고구마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서 고구마를 곱게 갈아 크림과 섞은 것인 줄 알았는데,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군고구마를 다져 넣은 것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 광고 사진을 보니, 고운 입자의 고구마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군고구마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이 맞았다. 역시, 사람은 물건을 살 때 설명을 잘 봐야 한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나는 아이스크림도 좋아하고 고구마도 좋아하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합쳐 둔 것이 맛이 없을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고구마 맛 아이스크림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데, 만들어 보면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