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묻고 문 두드리는 사람들
옛날 동묘 쪽에서 일했던 때가 있었다. 점심에 잠깐 일을 보러 밖으로 나오면, 이글거리는 한낱에 항상 막히는 동묘 사거리의 차를 구경하며 걸어다녔다.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풍물시장이 어디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매우 더웠고 빨리 업무를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빨리 길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길을 찾아서 저쪽으로 가면 된다, 하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그게 흔히 있는, 길거리에서 사람을 붙잡고 횡설수설 하는 그 사람들의 말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내가 그런 사람을 위해 짧은 시간을 내어 길을 찾아 알려줬다니 하는 허망함이, 돌아서는 내 머릿속을 채웠던 것 같다.
그때를 기억하다 보니 재미있는 것이 떠올랐다. 하도 길거리에서 길 묻는 척 하면서 별 이상한 것으로 사람을 붙잡고 영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면 보통 무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와서 길을 못 찾는 타지 사람들은 모든 인사는 거두절미 하고 목적지만 말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성수역! 성수역! 하고 외치면 사람들이 길을 알려 준다나.
나는 별로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옛날에 대학교 근처에서 방에 혼자 있을 때 누가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서 문을 연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모든 집의 문을 두들기면서 어떻게든 말을 붙여서 포교를 하려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는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도 나가지 말고 못 들은 척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정말 응급한 일이 있어 문을 두드리는 것도 모르게 되는 것 아닐까.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봤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재미있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길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고 있을 때 그 사람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급하게 전화나 물이 필요할 때 문을 두드린다면 방 안에서 나와 물을 주거나 전화를 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진실로 그러한 도움이 필요하다면 응당 그렇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마음을 이용해 어떻게든 말을 붙이고 그 사람을 자신의 영업장으로 끌어들이거나 기부를 하게 만드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된 덕에,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누군가의 길을 찾아 주거나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 위해 문을 열려고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목적지만 직설적으로 외치거나, 내가 위험에 처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절박해진다.
지금도 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초점없는 퀭한 눈으로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저기요~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정말 길을 찾고 있다 라는 신뢰감을 대가로 얻을 가치가 있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참으로 잘도 그런 가치가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