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일본인이 아니었습니다
동생과 도쿄를 여행하는 동안 날씨는 좋다 좋지 않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날씨가 좋아지지 않으려나 싶은 생각에 일단 밖으로 나와서, 아침을 사먹기로 했다. 여행의 시작은 숙소 조식이 업계 정설이지만, 조식을 먹으면 밖에서 사먹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잃어버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날 아침은 호텔 근처의 역에서 봤던 작은 스시 가게에서 먹었었다. 일본어를 못하는 나는 영어 메뉴 없이는 주문을 할 수 없었기에 옆쪽에 있던 다른 사람이 먹던 메뉴를 보며 눈짓발짓으로 저걸 주세요! 하고 간절히 표현했다. 다행히 문제 없이 먹을 수 있어서, 입맛 까탈스러운 동생이 말없이 잘 먹었다.
하지만 아침을 먹고 도쿄 구경을 시작하니, 건물 위쪽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흐린 날씨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오는 동안은, 하늘보다 건물 안을 더 많이 보았다. 비가 오는 낮 시간대에는 건물 밖 보다는 백화점 식품관 구경을 하고 전철 안에서 비 내리는 도쿄 구경을 하곤 했다.
백화점을 구경하고 나서 동생과 아키하바라를 갔던 것 같은데, 동생도 나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어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던 아키하바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가 보니 인형뽑기와 오락기가 가득 찬 건물이나 몇 층 짜리 건물이 통째로 성인용품 기계로 가득 차 있다던가 하는 것들이 많아,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동생이 인형 하나를 뽑으려고 2만원 정도를 쓰고, 나도 그걸 뽑으려고 만원을 쓰다가 안 되어 포기했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 곳에서 그 인형을 만오천원 정도에 팔고 있었던 것을 보고 허탈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구경을 하다 보니 저녁이 되었는데, 밤이 되자 아직도 비는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알록달록한 간판들과 조명이 반짝이는 건물들로 가득찬 아키하바라의 거리는 밤이 더 예뻤다.
빗물에 흠뻑 젖은 건물 위로 가로등이 비치지고 하고, 습한 공기 사이로 밤거리가 보이는 것이 예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많이 찍었다. 동생 사진도 몇 장 찍어 주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찍은 동생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찍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항상 어디서 먹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지나가면서 봤던 저기 말고 다른데 가자, 하는 가게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아키하바라에서도 그랬다.
가게에 들어가서 바로 앞쪽에 있는 자리에 앉으니, 주방 안쪽이 잘 보였다. 동생과 대화를 하고 있으니 직원이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주문을 편하게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 하면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왜인진 모르겠지만, 한국어를 이용해서 주문을 받아 주었던 그 직원이 한국인인가에 대한 대화를 동생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한국인인 것 같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묘하게 그 직원의 한국어가 문장 어순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던 직원이 자기 한국인 맞다고 해 주자, 나는 아까 우리가 했던 대화를 그 사람이 못 들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다는 그 사람은 한국인이 맞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 직원들도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었는데, 곧 한국에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했었다. 한국어를 잘 해서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
동생이 먹은 고기덮밥은 무난했고, 내가 사 먹은 햄카츠는 분홍소세지를 돈까스로 만든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그때 만났던 한국어 아주 잘 하는 한국인은 그날 일정의 마지막 특별함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