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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것은 기록뿐이다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 테이프

by 문현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이사오기 전에는, 집에 이런저런 물건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책꽂이에 계속해 꼽아 두었던 책들, 선반 위에 잔뜩 쌓여 있었던 옛날 음악 CD 나 돌아가는지도 알 수 없는 레코드 판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이사를 오면서 남김없이 버려졌다. 이사 몇 번이면,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법이니까.




그 이사를 거치고 나면서 중요한 것들만 옮겨졌는데, 문득 엄마가 모아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받아왔던 것 같은 학교 시험지와 수업 시간에 썼던 것 같은 편지지. 나는 보기에 창피하다고 생각해 그 쪽을 보지 않았지만, 그 아래 쪽에 비디오 테이프 케이스가 있는 것을 보고 열어 보았다.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였다.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필름이 돌돌 말려 있는 비디오는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꽤 흔한 것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비디오 대여점에 보러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보고 싶은 영화를 찾지 못한 것이 아쉬울 때도 많았다. 노이즈 가득 낀 작은 브라운관 티비로 매트릭스와 에일리언을 보던 그 때는 정말 옛날 일이라, 이젠 비디오 테이프를 읽을 수 있는 기계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결혼식 테이프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먼지를 맞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필요 없는 것은 바로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지만 비록 그 비디오를 볼 방법이 없다 해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 옛날의 것들이 대부분 없어졌지만,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부모님의 결혼식 테이프는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문득 그 비디오 테이프를 동영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검색해 보니 다행히도 많은 업체들이 비디오 테이프를 영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 안에 벌집처럼 들어찬 영상 업체들 사이 한 곳을 찾아가 비디오를 맡기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디오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동생은 그런 것 어디다 써먹냐고 하면서 또 이상한 데에 돈을 날렸다는 것처럼 이야기 했지만, 부모님은 그 영상을 보시고 좋아하셨다. 단순히 결혼식을 찍어놨다는 것이 아니라, 결혼식을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까지 모두 영상에 남아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또 시간이 지나서 온 가족이 친척 모임을 하고 있을 때 친척들이 옛날 오래 전 돌아가신 다른 친척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내가 복원해서 엄마에게 드린 영상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에 그 친척이 등장한다는 말에 엄마가 영상을 재생해서 보여주니, 다들 그 사람이 맞다면서 놀라워했다. 게다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 영상에 나오고 있었다. 몇 십년 전의 모습으로.




내가 영상을 복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의미가 된다면 좋겠다 바라던 대로 이뤄진 것 같아서 기뻤다.




나는 글을 쓰고 영상을 찍으며 사진을 남기곤 한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남긴 그런 기록이, 부모님의 결혼식 영상처럼 나중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부모님이 말하시던,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는 것도 결국엔 그런 말 같다.




시간이 지나며 잊혀지는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남는 것은 기록 뿐이니까.




부모님의 결혼식 영상처럼, 내가 남긴 기록도 나중에 다른 의미가 있기를 바라면서. 2021 06, 서울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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