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갠 날
동생과 일본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날이 좋지 않았다. 밤에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은 좋았지만, 낮에는 푸른 하늘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특히 보고 싶었던 것은 벚꽃이었는데, 항상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던 탓에 벚꽃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비오는 날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동전 세탁방을 이용하면서 주위를 둘러본 적 있었는데 지도상에 벚꽃이 피어 있다고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구글 지도를 이용해 근처를 검색하면 벚꽃이 많이 피어 있는 곳을 검색할 수 있었는데, 근처에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근처는 다 주택가 인 것 같아서 관광지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가 보고 싶었다. 숙소에서 가깝기도 했고.
다행히 한국으로 돌아오는 직전의 날, 단 하루 일기예보가 맑은 날이 있었다. 전날 일기예보를 보며 동생에게 내일 날이 맑으면 아침밥을 먹고 한 시간 정도 구경을 하고 오겠다고 한 뒤였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쨍쨍한 햇살에 푸른 하늘이었고, 나는 아침을 먹고 구글 지도에 있는 벚꽃 명소로 갔다.
조금 걸어서 도착한 공원은, 뭐 크게 대단한 것이 있을까 싶던 내 기대 이상으로 예뻤다. 작은 공원에 벚나무가 한가득 피어 있었는데, 예쁘게 핀 벚꽃과 떨어진 벚꽃잎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개화 시기를 조금 지난 것인지 벚꽃 사이로 푸른 잎들이 돋아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분홍색 벚꽃이 활짝 핀 것은 너무나도 예뻤다. 이 장면을 볼 때 너무 감격스러웠는데, 나중에 일본에서 벚꽃을 보고 싶었다 하는 사소한 소망보다는, 일본 여행 내내 이토록 맑은 날씨와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가 드디어 본다는 것이 감개무량 했던 것 같다.
공원에서 조금 걸어가니, 바로 앞쪽에 노면전차가 다니는 길이 있었다. 혹시 기다리고 있으면 전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잠시 기다리니, 전차가 오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직접 본 지 아주 오래된 것만 같은 건널목 차단기 같은 것들을 다시 보니 재미있었다. 건널목 너머에 또 벚나무가 몰려 있는 것 같아, 천천히 날씨를 즐기고 오가는 전차를 몇 번 기다리며 사진도 찍었다.
건널목을 건너 가니, 좁은 길 사이로 벚꽃나무가 줄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맑은 날씨에 조금씩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휘날렸다. 바닥에 꽃잎이 모인 것이 딸기우유를 부어놓은 것 같았다.
바람이 불면 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져 이리저리 날렸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걸 보고 사진을 찍곤 했다. 그 사람들도 관광객이었는진 모르겠지만, 골목 전체에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히 벚꽃 구경을 하기에 좋았다. 아침 시간에 방문해서 그런지 종종 걸어다니는 사람만 있을 뿐, 차도 별로 지나다니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휘날리는 벚꽃을 보며 사진을 찍고, 혼자의 시간을 조용히 즐겼다.
동생은 피곤해서 나오지 못했지만 같이 본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도 좋지만, 그래도 둘이서 같이 좋은 경치 구경을 하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그때 여행 일정의 단 하루, 유일한 맑은 날, 부족함 없는 벚꽃 구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