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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들 먹으면서 해

대표가 함박웃음을 지었던 이유

by 문현준

옛날에 대표가 회람판을 돌린 적이 있었다. 회람판에는 야근을 하지 마세요, 라고 적혀 있었고 조직원들이 서명을 하는 칸이 있었다. 회사에 있던 사람들이 그 옆에다가 사인을 했다. 나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모두 야근을 했다.




한번은 일이 많아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부장들까지 퇴근을 넘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던 적이 있었다. 늦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집에 다들 안 가고 아니 못 가고 있자,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늦었는데 왜 집들을 안 가고 있어? 일을 할 거면 저녁을 사 먹고 해.




비슷한 일이 이전에도 있었던 것 같다. 일이 많아서, 점심을 한참 넘겨서 까지 밥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밥을 오후 한 시에 먹는데, 두 시가 넘어서까지 밥을 못 먹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니 대표가 말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왜 밥들을 안 먹고 있어, 밥들 먹고 해. 그때도 대표는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사람의 웃음이란 다양한 종류가 있어서, 그냥 웃는 것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웃는 것도 있고, 더 큰 웃음을 가리기 위해 적당히 웃는 것도 있다. 내가 본 그때 대표의 웃음은 마지막 웃음이었다. 대표는 아주 즐거워 보였다.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고, 점심을 못 먹으러 가고 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었다.




이게 지금 웃을 일인가? 일이 많아서 정해진 시간에 집에 못 가고, 점심 먹을 시간에 밥을 못 먹고 있는 것이, 웃을 일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조직 관리자의 입장에서 구성원들이 기본적인 인간 욕구와 개인의 성취를 포기하고 조직 톱니바퀴의 일부가 되어 돌아가는 것을 본다면, 함박웃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집에 못 가고 밥을 못 먹는 것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내가 그곳에 있다면 앞으로도 내 위의 사람들처럼 일할 수밖에 없을테니까.




나는 그것을 보며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대표는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당연히 같을 수 없고, 같을 필요도 없는 그런 생각이다.




대표는 야근을 보며 웃었고,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2022 05, 서울 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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