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도동, 행남해안산책로
본격적인 울릉도 여행 첫날, 엄마와 엄마 친구를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나는 저동에서 출발하는 봉래폭포가 얼핏 보기에는 가까운 줄 알고 대중교통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가자고 호기롭게 말했다가 크나큰 대가를 치뤘다. 그 뒤로 큰 교훈을 얻은 나는, 다음 목적지인 행남해안산책로 까지 갈 때는 어김없이 두말하지 않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저동에서 출발해 도동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편하게 도동까지 도착한 우리는,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바삐 오가는 차와 사람들을 보며 뒷골목을 구경한 뒤 도동항으로 갔다. 전날 밤 늦게 도동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저동으로 가야 했던 탓에, 도동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동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도동의 여객터미널 위쪽에는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다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위로 걸어올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다보았다. 여객터미널 위쪽에서는 도동의 북적이는 전망이 보였는데 주차장에는 큰 버스가 끊임없이 오가고,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흩어졌다 모여들었다를 반복했다. 도동항에도 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바다 쪽으로 걸어가니, 해안산책로 쪽으로 가는 표지판이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날씨가 흐렸는데, 봉래폭포 구경을 하고 내려오니 날씨가 점점 맑아져서 해안산책로 구경을 할 때쯤이 되니 꽤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해안산책로 쪽으로 가며 도동을 바라보니 구름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울릉도의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작은 섬인데도 높아 보이는 산봉우리와, 산봉우리들이 늘어선 능선이 이국적인 느낌이라 신기했다.
해안산책로는 여객터미널 쪽에서 인도로 연결되어 편하게 걸어갈 수 있었는데, 울릉도의 바위투성이 해안선을 따라 길이 나 있는 형태였다. 중간중간 암석 위에 보행도로를 만들어 놓은 곳도 많았는데, 짙푸른 동해 바다와 함께 맑아진 하늘을 함께 구경하기에 제격이었다. 산책로는 꽤 길이가 긴 느낌이라, 설렁설렁 걸어가며 바다를 구경했다.
그런데 걸어가는데 산책로의 기준이 내가 아는 산책로랑 많이 다른가 싶었다. 어쩌면 직전에 봉래폭포까지 가는 매표소 이후의 길을 경험해서 그럴까. 나무로 그늘져 있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닌, 돌 절벽 중앙을 깎아서 시멘트로 정리해 놓은 것 같은 자연 그대로의 날것 길에 걷는 것이 꽤 고달픈 편이었다. 많이 걸을 거라는 생각에 편한 신발을 신고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게다가 좋아진 날씨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오히려 좋지 않은 것도 있었다. 구름이 걷히자 땡볕이 무지막지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도동에서 출발하는 행남해안산책로는 한쪽 방향으로만 계속해서 걸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산책로가 절벽에 딱 붙어 있는 형태라 그 어떤 그늘도 없었다. 결국 끝까지 가는 동안 나는 한쪽이 탔고, 돌아오는 동안은 그 반대쪽이 탔다. 선글라스에 선크림, 팔토시까지 중무장한 엄마와 엄마 친구는 괜찮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울릉도의 본격적인 첫날 일정으로 그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기에, 이날 꽤 많이 탔던 것 같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파내어 만든 것 같은 산책로는, 파도치는 동해 바다를 보기에 딱 좋다. 짙푸른 파란색이 남색으로 변하다 못해 검어지는 것 같아 보이는 바다를 보며, 일렁이는 바다가 짠내를 풍기며 밀려와 하얗게 부셔지는 모습을 바로 아래에서 볼 수 있다.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가다 보면 자갈이 흩어진 작은 해변이 나온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와서 하나씩 올려두고 갔을 것 같은 돌맹이 탑들을 보면, 그곳이 해안산책로의 끝이다.
더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것 같지만, 길 안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아무리 봐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장사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휴게소 안내판과 컨테이너, 오래전에 만들어져 빛바랜 것 같은 유명 여행 예능의 기념물이 남아 있다.
탁 트인 이곳에서 바다 구경을 하고 나서 계속해서 걸어가 저동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산책로를 만들고 있는 중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한 우리는 계속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 현지인으로부터 그곳에 도동과 저동을 잇는 옛길이 있다는 말도 들었고, 완전한 해안 산책로로 연결하는 길을 준비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때는 길을 찾지 못해 결국 그대로 다시 거꾸로 돌아와 도동으로 돌아왔다. 이미 본 풍경을 한번 더 보며 돌아온다는 것은 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도동으로 돌아오고 나니, 또다른 교훈을 얻었다. 울릉도에서는 아무리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걸어다니는 명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햇볕이 강한 날씨에서는 꼭 햇볕 차단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울릉도의 특산물인 오징어마냥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