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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여권 인스타

사진첩 이상이 되어가는 SNS

by 문현준

옛날 친구가 나에게 인스타그램을 해 보라고 했다. 그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블로그를 기획 중이었던 나에게, 글보다는 사진이 유인력이 더 크고 너는 사진을 자주 찍으니 인스타그램이 어떤가 하고 추천했었다.




사진 보정 어플인 줄 알았던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이 그때 이후였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인스타그램을 잘 썼던 것 같다. 딱히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은 아니어도 먹은 것과 간 곳,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곤 했다.




단순히 사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인스타의 피드를 구경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알고리즘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나에게 가장 직접 닿아 오는 것은 인스타그램 피드의 알고리즘이었다. 내 취향대로 골라진 게시글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기분 좋은 일들만 있는건 아니어서,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타인의 반짝거리는 순간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상황에 지치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가 본질이 결국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서, 최근에는 다시 이것저것 기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터넷에서 인스타그램을 전자여권 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해외여행을 갈 때 도장에 찍히는 각각 다른 나라의 도장처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기록이 여권에 찍히는 도장과 같기에 전자여권이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싶었다.




문득 그 말을 듣고 나니 인스타그램이 여권과 비슷한 것이 많다고 느꼈다. 어딘가를 갔을 때 그것이 기록되고, 나중에 그걸 다시 볼 수 있으며, 그걸 보면서 옛날에 갔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글이 아니라 사진 위주로 구성되는 SNS 인 인스타그램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원하는 사진을 남겨두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함께 볼 수 있으면서, 나중에 또 언제라도 볼 수 있게 기록해 두는 것. 사람들이 그렇게 인스타그램 안에 머물게 되고, 그렇게 머무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게 된다. 인스타그램은 원래 대화하기 위한 SNS 가 아니었음에도.




비록 시작은 전자여권이었지만, 점점 그 이상을 향해 가는 인스타그램을 느끼는 요즘이다.




인스타그램은 점점 전자여권 이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2022 08, 서울 성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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