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버티면 좋은 일이 일어나나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 도둑이기도 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에서 재미있기도 하다. 그중에 가장 시간 잡아먹는 귀신은 아마 로또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몇 살 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같은 것일 것이다. 로또가 되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어릴 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결정할 것이 많겠지만, 좌우지간 일어나지 않을 일에 신경쓰며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조금 지났지만, 예전에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들을 본 적이 있었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할까 하는 밸런스 게임의 종류였는데, 대부분이 버티고 얼마 받기 같은 것이었다. 가령 집에서 사람만한 바퀴벌레랑 1년 살고 얼마 받기, 인터넷이 안 되는 산장에서 얼마 살고 얼마 받기, 같은 것들이었다.
술자리에서 이미 한참 취하고 나서야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 들이지만, 맨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그걸 정말 버틸 수 있을지와 또 그걸 버티고 나서 얻는 보상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이야기들도 많이 떠올랐다. 가령 얼마 받고 군대 다시 가기, 얼마 받고 인생의 힘들었던 그 때로 돌아가기 같은 것들이었다.
비록 인터넷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사라지지만, 나는 항상 그런 이야기를 사람들이 찾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이런 버티기 밸런스 게임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는지가 궁금해졌다. 그저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것을 견뎌내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은 상상도 있지만, 기분 안 좋은 상상도 있으니까. 집에서 이상적인 반려자와 일생을 함께하는 것을 상상하는 경우는 많아도, 등신대의 바퀴벌레와 함께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것처럼.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가상의 생활을 버텼을 때 얻게 되는 보상이다. 바퀴벌레와 같이 살면 얼마, 중요한 것 없이 살면 얼마, 같은 것들이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과 함께 할 수 있는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없이 지낼 수 있는지, 그 상황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기도 하고, 그 상황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 얼핏 보기에 버티기 밸런스 게임의 묘미 같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버티기 밸런스 게임의 묘미는 그 저울질에 있겠지만, 사람들이 버티기 밸런스 게임을 생각하며 결국엔 그것을 버티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신기했다. 버티기 밸런스 게임의 핵심은 버티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버티고 나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버티면 보상을 얻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버텨서 보상을 얻는 사람들보다는, 버틴다는 것은 그저 현상유지만 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일하고 돈을 모아도 생각한 것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는 힘들 때, 결국엔 버텨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회의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럴 때 버티기 밸런스 게임은 한 가지 환상을 심어준다. 버티면 보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보상이.
어쩌면 버티기 밸런스 게임은 자신의 성향을 생각하며 진행하는 저울질 보다는, 버티면 결국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해도 발 밑이 모래에 빠져들어가는 죄어듬을 느끼는 현대사회에서, 버티면 좋은 일이 생긴다면서 간절하게 믿는 사람들을 위한 흥미 말이다.